원고-카메라를든사회복지사

장충동 어느 식당의 '그냥'하는 소머리국밥 대접이야기

이감동 2017. 8. 24. 05:53

'그냥' 이요

얼굴쪽으로 카메라 렌즈가 향하는 것을 무척 싫어 하던 식당 주인은 

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십사년인가를 음식점을 해오면서 호흡이 척척 맞았을 부부인데

남편은 '고기를 너무 작게 썰고 있다' 고 잔소리를 하고 

부인은 '어르신들 드시려면 좀 작게 썰어야 한다'고 

기름기 가득한 손으로 조심조심 고기에 붙은 기름을 떼어낸다. 


몇 시간동안 푹신 삶아서 익힌 소머리고기는 

족발 빛깔이 나면서 젤리같이 탱탱한 것이 

한 점 입에 넣어주시는데, 무척 맛있다. 


고기를 칭찬하면 부끄러운 것 하나 없이 

술술 이야기를 잘 하다가도 

어김없이 카메라 렌즈 앞에서는 손사레를 치니 

말없이 스케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까지 한다는 말에 

난감해 하던 동사무소 직원들의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동사무소 직원의 말처럼 

선의로 하시는 일에 카메라 촬영이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오늘의 촬영은 카메라 한 번 제대로 켜보지도 못하고 

소머리 국밥 한 그릇 먹고 가쇼~ 라는 이야기를 들을 판이다. 


영상으로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본의 아니게 '구걸 하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내야 할 경우가 많다. 


음식점의 위생문제를 지적하는 

고발프로그램의 TV화면, 

파파라치 같은 카메라를 연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생활의 달인' 을 촬영하러 온 것 같은 신뢰를 

짧은 시간 안에 얻어내야 한다.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같이 동행한 동사무소 직원들이 

식당 주인과 기존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동주민센터에서 주민자치위원으로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 온 덕에 

같이 동행한 카메라맨은 일단 대화는 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촬영에 대한 허락을 얻어내는 일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 있다. 


보통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분은 

음식에 어떤 정성이 들어가고,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는 지 물어보면 

자기 일의 가치를 알아차려주는 게 반가워서

카메라의 존재를 잊고 신념이 담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곳 식당 부부 역시 

삶고 있는 고기에 어떤 정성이 들어가는지 말문이 트이니 

주방 깊숙이 펄펄 끓고 있는 들통속의 

또 다른 고기를 꺼내 보이면서 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 놓으신다. 


펄펄 끓는 들통속의 

기름를 걷어내면서 

맛있게 드시는 어르신들의 반응을 설명할 땐 

카메라 렌즈로 

주인장 얼굴 한 번 담아 보고 싶다는 유혹을 꾹 참고 

계속 끓고 있는 고기만 열심히 촬영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으세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대접하게 되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시려나) 여쭤보니 

'그냥' 하신단다. 


식사대접 하는 보람 같은 이야기라도 비취실려나 했더니 

그냥 하는데 무슨 설명을 더 할 수 있겠냐 하신다. 


일년에 서너차례 

자기들 식당메뉴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실만한 소머리고기를 

몇 시간을 삶고, 썰고 해서 

자기네 식당 홀 가득히 어르신들 식사하시게 한단다. 


잠깐 본 동안에

고기 써는 크기 때문에, 포장용기 때문에 

서로에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신기하게도 '그냥' 식사 대접 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인장 부부의 대답이 일치한다. 


다행히도 하루 전날 

인사하듯 방문한 덕에 

내일의 본격적인 식사 대접 모습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얼굴 한 번 찍어보지 못한 

촬영을 마쳤다. 


분명 내일의 촬영에선 

어르신들 대접하느라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을 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