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다시묻다-가치관에 대한 책같은데요
인간의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책이에여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저는 인문학 자치회 회원인 1기생 김영옥입니다.
인문학 강의를 듣고 조희가 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자체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빨간옷 –눈화장 아줌마
책은 수시로 읽어요
애들키우면서 죽도록 일만하다가
나에대해서 알고싶고 되돌아보고 싶더라구요
4단지 공고를 보고 바로 신청했어요
제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 정말 고민을 하다가
심리학 시간에 무너졌어요 김태형교수님한테 폭빠져가지고
그래서 바로 사인까지 받으면서 폭빠졌어요
아니 인문학과 심리학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인문학은 관계다가 제마음에 들어오긴했는데
어 왜 인문학이 관계지?
관계는 저를 알면서 저와 부모 저의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서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서 신랑을 만나고 내아이를 올바르게 키웠나 다시 성찰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관계.... 인문학은 관계다 이게 정답인것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심리학책을 다 읽었어요
저희 아이도 읽고 사인도 받았어요
다른사람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그래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것인가 고민도 되고
무엇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나눠줘야 될까?
재산이 아라 내가 죽으면서 어ㄸㅎ게 살아왔나
내가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말을 하고 싶어서 인문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했던게 너무 자랑스럽고
힘들게 간호사로 밤근무하면서도
글쓰기도 하면서
제자신에 대해서도 마음속에 품고 있던것도
글로 쓰고
오도엽 선생님하고
제가 쓴 글들을 해주시면서
좋은 평가도 듣고 ...글쓸적에 제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고
이시점에서 제 자신이 다시한번 이 나이대가 되돌아보는 시기라는 것을
책을 보면서 더 많이 느껴졌어요
부모 나 아이의 비밀
아이도 방학동안 읽어보라고 했는데
제자신이 사회생활하면서 치유되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더라구요
부모한테도 물론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남모르게 말씀을 못드렸었는데
이번에 치유도 됐던것 같아요
내자신이
전에썼던글
인터뷰 짝꿍을 만난 후 쓴글
그랬다
가을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다음날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안부가 걱정되고 며칠동안 무엇을 생각하며 지냈을까
나에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분
병원으로 출근하는 정오시간에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문자를 눌렀다 감기조심하라고
바로 벨이 울렸다
직접들은 목소리는 걱정되는 것보다 발랄하고 아무일이 없는듯 했다
그녀는 서울이 고향이고 54년생이며
자녀들이 얼마전까지 미국으로 출국하여 4명다 미국에 거주한다.
안경너머엔 중년의 세련미가와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무리속에서 외롭고 힘들게 겉돌지만
미운오리에서 백조를 갈망한다
나는 없고 남편 아이들 속에 어리석고 초라하고 나를 학대아닌 학대를 했다지만
강인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건 무엇일까
남편의 이탈은 그녀에게 있어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
아니 아내에게 있어 남편의 존재란 뭘까?
지금 아이들과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며 미소짓는 얼굴에서 가을은 왠지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마음으로 글을 쓰신거에요?
이 언니를 보면서 이언니를 답사를 갔었는데 그날 처음 뵜었어요
그 언니가 물을 끓여서 먹으면 좋다고 여자들도 몸을 챙겨야 한다고했는데
아 저 언니도 같이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오신거에요
저의 짝꿍이 되어서 인터뷰를 했는데
처음에 자기의 남편얘기를 스스럼없이 해서
어 이건 뭘까 나에게 이런이야기를 할 수 있는것이 쉽지 않을텐데
며칠간 계속 생각을했어요
그러면서 써서 그런것 같아요
무슨시간에 쓴건가요
오도엽선생님 글쓰기 시간에 쓴거에요
인터뷰를 하는데
처음에 문장을 어떻게 꺼내는지 보셨거든요
저같은 경우는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하는지 ....
부럽고 그다음에 말을 상당히 조리있게 하시고
인터뷰에 재능이 있는 분같도 나도 배우고 싶네요
어느날 간행물을 보니까 인문학 커뮤니티라는 글이 보였어요
평소에 관심이 있었는데
대학강의도 찾아다니고 글도 모으고
영화를 보다가도 핸드폰으로 메모도 하고 그래요
한권의 책은 타성으로 얼어붙은 내면을 깨는 도끼다(신문칼럼)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마라 대신 책만봐라(신문)
지금시작하는 인문학 - 철학 심리학, 해화, 세계사
플라톤의 이데아세계에대한 정리가 되어있어요
이데아의 세계는 비물질적이고 감각에의해 느낄 수 없는 존재의 세계이고 환상적이고 이성의 세계이다
이렇게 설명되고
고대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중에 프로타고라스가 대표적인데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인간이 없다면 모든사물은 의미가 없다
모든지식도 인간의 감각이 없다면 파악불가능하다
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고
인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문학은 정의가 많은데 그중의 하나가
인문학은 지혜를 배우는 학문이고 삶을 배우는 학문이다
근데 우리 사실 공부 많이 했잖아요 유치원때부터시작해가지고
많은 공부를 하는데 가장중요한 삶에 대한 공부나 지혜에 대한 공부는 안하고
그 중요성을 모르고 인생을 살아오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어느정도 시점이 되면 조금씩 깨우치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인문학을 하려면
인문학 책을 읽어가지고 거기에서 세계 위인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위인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삶에 반영이 될 부분은 반영을 시키고 하면서
우리의 삶의 질을그만큼 높여주고있다는 장점이 있고
책자체를 읽는 그순간 카타르시스 맑은 정신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참 재미있는 인생이 될것같고
이 공동체에 참여하게 됬고
인문학커뮤니티 5기수료생이며 인문학 자취위원회에 참여하게되었어요
저는 1기생으로 6기까지 여러사람을 많이 봤는데
새롭게 보니까 제가 1기때 처음 쓴글을 발견했어요
첫날 장건희 선생님
작년에도 만났던 선생님이 나를 알아본다
마음한켠이 따뜻해온다 만남이란 이런건가
내면의 세계 나만의 울림을 통한 내자아가 깨지고 새롭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나만의 세상 나만의 공간
껍질을 벗고 새운것에 도전해 본다
감성과 이성사이에서 내울림의 선택 과연 나는 그길을 가고 있는지
이게 제가 처음 썼던 글인것 같아요 너무 새로와요
두분의 글이 느낌이 다르네요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다.
행복은 내면에 있다
그 사람의 사람됨이 행복의 척도다
인간의 마음속에 행복과 불행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마음을 바꾸면 환경도 바뀐다.
인문학은 소통과 관계다
소통의 중요성을 찾으려면 나의 마음에 관심을 갖고
진실한 언어로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데서 시작된다고 한다.
가슴에 확 와닿는다 나는 과연 소통을 잘하고 있을까
그사람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보지말고
나와 다른차이를 받아들여야하는 것에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항상 내생각안에서 결정한것이 옳다고 살아왔고
나와 다른 생각이 다르면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광기였나보다
이제 서로 다른차이를 인정하고 한번더 생각을 해봐야 할것같다
그러면 여태껏 힘들게 살아온 내 문제들이 풀리지 않을까
실타래같은 문제들이 하나하나 풀리면
내생활에도 행복이 찾아오리라
마음의 평안이 곧 행복의 보물이 아닐까
이거는 두번째 강의를 듣고난 뒤에 쓴 글인것 같아요
보니까 새롭네요 이거는 저의 지나온 세월을 썼던것 같고
저의 자화상이라고 또하나 쓴글이 있는데
저의 자화상 1기 끝무렵에 쓴것같아요
이걸 보고 저가 변했던 얘기를 한번 해보려 합니다
나는 누구일까 내안에 있는 너는 누구니 항상 반문을 해본다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너
나를 흔드는 너
기쁨도 주고 슬픔도주는 너 그러면서 그리워하는 나
나와 너가 만나서 조화를 이루고
마음과 행동을 같이하고 그가운데삶을 지탱하고 힘을 얻고
위로받고 항상 같이 하는 나와 너의 관계
죽을때까지 함께하리라
저가 이 인문학을 강의를 들으면서
그동안 아이들하고 생활에서 찌들어서 살았던 그런거에서 나를 찾는 계기가 되었던 인문학이었던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를 새롭게 변화를 갖고 싶어서
배우는 것은 살아있다는 느낌이라는 듯이 뭔가 항상 배움을 찾는 계기가 되서
저가 51에 조리사 자격증도 도전해서 땄고
새롭게 나를 찾아보자 행동을 한겨죠
도전을 해보자해서 조리사 자격증도 따고 취직도 하고
요즘은 얼마전에 파워포인트 교육도 끝났고
지금 요양보호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거로해서 남을 이웃을마을 공통체 인문학이다보니
통장도 하고 있고 청소년 선도를 주도하고 있어요
앞으로 계기가 되면 그런일을 하고 싶어요 쉼터같은
청소년 쉼터
그런거에 항상 마음을 두고 있어요
인문학은 관계 사람간의 만남
저를 깨우는
인문학은 나의 삶이다
나를 깨우면서 내가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삶이다.
저는 너무 좋습니다
그전에는 애들과 그런걸 보다가 저를 찾았어요
인문학을 하다가 나를 찾았다고 봐야되요
처음접했던것죠 그런강의를
이런좋은 강의같다
여러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서 다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저같이 새로운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희를 다 내려놓는 글쓰기 같은 그런거에서 완전히 나를
옛날 밑바닥에 있던걸 다 끄집어내는 그런 시간을 통해서
나를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내가 앞으로 나갈수 있는 용기를 가졌던것 같아요
인문학을 모르던 삶에서 인문학으로 들어오는 과정이 쉽지않았을텐데
저는 철학에서 감명을 너무많이 받아갖고
그동안은 억눌려서 참고만 살았던그런거에서
저를 다시한번 내면서 울면서 토해낼때
그모든 감정이 다 풀리는 것같은 그런 거에서 계속 발걸음을 많이 했던것 같아요
그전에는 그럴 시간도 없었고 애들키으느라
나를 한번도 생각해 볼 수 없었죠
50세때
다시한번 나를 찾으면서 내 주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것 같아요
그래서 후속모임을 가졌고
저만 최고인줄 알고 살다가
나보다 다른사람이 있다는거
환경, 성격 행동...
처음에는 못마따하고 아 왜저래 하다가도
아니야 저런 사람도 있어 강의를 들으면서 깨닫고
이제 내가 좀 바뀐..이해를 하게된 계기가 된것같아여
다시볼때
요즘은 나와 틀린사람을 보더라도 아 그래
저런사람은 저사람대로 좋은점이 있는거야
나와 틀린 또 그사람만의 갖고 있는 좋은점이 있어서
요즘은 사람들 볼때마다 다 존경스러워요
방화동에 8년거주
저는 그동안에는 사는게 바빠서
복지관이 그곳이 과연 뭐하는 곳인지
내가 그게 필요한 건지를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강의를 들으면서
내 주위의 복지관은 뭐하는 곳인지 가보고
요즘 이슈가 되는 노인분들에 대해
내년에는 노인분들을 위해서 저희가 시간을 내서
소통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아는만큼 실천을 해보고 싶어서
통장들 모임을 갖고 싶어서 연락을 하고 있어요
저만하는 것보다는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추진하고 있어요
나만 최고인줄알고 살다가 다른사람이 더 훌륭하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노인분들은 저보다 그 지식이
삶의 지식과 지혜가 더 배울게 많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시선으로 다시
예전에는 노인네가 뭘알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분들의 삶이 나의 미래같아요
그래서 내가 앞으로 갈때 그분들의 배울점이 있는것 같아여ㅛ
얘기해보면 진짜 지혜로우세요
가진것은 없어도 행복을 가질 수 있다는거
있는것만이 행복하지 않다는거
내가 얼마든지 조금의 시간을
시간이 없다고 사람들이 아 나 시간없어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조금의 시간을 내면 내가 남을 위해 할 수 있고 나자신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거
진짜 행복해요
그래서 강의 듣고 나면 없는거에요
너무 속상해요 그래서
인문학선전좀 많이해서
같이 더 모이면 더 좋은걸 꿈꿀 수 있고
설계할 수 있잖아요 다른걸 할 수 있잖아요
작은힘은 할 수 없어도
모여서 했으면 좋겠어요
만날때마다 우리 자치회 들어오시라고 홍보하고 있는데
마음이 다운이될때 그걸 보면서 용기를 갖고 있어요
핸드폰에 저장을 많이해서
인문학 1기생으로서 인문학
내게 주어진삶을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럼 3년동안 내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크게는 항상 무언가를 찾아헤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길을 가는 중이다.
한식조리사자격증도 취득해서 취직도 하고
파워포인트도 배웠고
지금은 요양보호사자격증에 도전하고 있다.
동네일을 보는 통장직도 수행하고 있고
청소년 선도에도 관심을 가져보고
부자가정 반찬나눔 활동도 하고 있으며
마을봉사단 인증도 받았다.
앞으로는 홀로사는 분들의 말벗도 되어드리려 계획 중에 있다.
이렇게 변화된 내모습은 인문학 강의를 듣고 하나하나 한일이다.
자치회활동도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바쁘다.
아들 셋이 있지만 엄마의 이런 모습에 다들 자기일에 충실하다.
돈에 쫒겨서 찌들어가는 나에서 나를 찾아보고 남을 생각하는 내가 되었다.
나와다른 여러사람을 만남으로 서로 달라도 서로 소통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치회 회원분들은 가족 같고
서로 숨김이 없고 만나면 반갑고 기쁘다.
미정쌤, 지숙, 상윤, 김문숙, 장정애, 임사장님, 정종철씨, 노현수씨, 노선희씨, 김경덕씨,
김창호씨, 김연희, 신동혜, 마은아, 원복언니, 최승희, 강상복씨, 이홍렬씨, 김진섭씨, 박연숙씨
모두다 그리운 우리같은 식구들이다
저희는 인문학 자체가 식구같아요
포럼같은데 가면 삼촌 엄마 딸...
이분은 임사장님입니다.
자장면집을 30년을 한 주방장님으로서
저도 한식조리사를 따고 이분하고 같이 요리의 세계를 같이 갈까도 생각 했던 분이고
그래서 정감스럽고
저가 이렇게 인문학 자치회에 인도도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책을 보는게 한문책을 많이 보는데 모르는게 있어서
그래서 더 좀확실히 알고 싶어서 찾아보고 있습니다
쉬고 있는데 김영옥선생님이랑 같이 수료증받고
몇개월뒤
연락이 와서 와봤더니 3기 시작해서
그때부터 강의 듣고
내마음이 변한게 있죠
그림철학이라던가 무슨 철학에 대해
나의 심리학의 변화에 대해 많이 변화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걸 유지해야겠다싶어 4기도 했고
자치회가 있다해서 1달에 한번 만나는데
너무너무기뻐여
기뻐서 오는거에요
기뻐가지고 오늘도 오면 마냥기뻐요
기뻐서 오는거니까
뭔지는 잘 몰라도 기쁘니까
생각만하고 있어요
앞으로 뭐 내가 또 인문학에 한달에 한번 모이는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정이들고
처음에 이지역에 왔을때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래도 빨리 인문학에 오게되어서
정도들고
1년에 한번씩 사람들이 바뀌는것 같아 아쉽더라고
정들면 어다가고 안나오고 그래서 그런게 조금...
2007년도에 왔어요
꾸준히 다녔습니다. 정도들고 좋았습니다.
18살때 부산으로 가서 1년살았는데
처음에는 만두 전문집에만 갔었어요
만두기술을 다 배웠고
자장만드는 주방장이 중화요리 주방장 친구가 놀러와서
새로 오픈하는 자장면집에 갔어요
1년하다가 면뺴는걸 배웠어요
서울에 와서 종로 4가에 와서 시작해서 서울시내 안가본데 없이 다가보면서
일을했고 지방에도 이 기술로 해서 거의다 다녔습니다.
중화요리에 대해 다 알고 있어요
큰집 작은집 다 알고 있고 후배들도 찾아오고 그래요
마지막에 600평되는 집에서 일을했는데 전표가 다 한문으로 되어있어서
한문도 알아야하고 중국말도 해야하고
작은집이라하면 제가 한번 일을 갔는데
불이 하나고 솥단지가 하나에요
우동하고 자장면이 왔는데
우동솥에 끓여 내려놓고
짜장솥에 자장만들고
중국집은 사람많이 쓰는데가 큰집이에요
일년에 두번 포럼하는데 재능나눔 기부하는데
그때 300그릇이 넘게나갔죠
지금은 수화공부를 하고 있어요
인문학은 지켜봤죠
저는 처음에는 사실은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 온게 아니라
저 아는 분이 1긴가 2기 강의를 들으셔서
여기 너무좋다 해서 그냥 온거에요
그래서 와서 보니까
이제서야 제가 생각이 약간 바꼈다고 해야 할 까요
저는 오히려 그전에는 앞만보며 살았고
나는 항상 내가 옳다고 하면서 살았고
나의 가치관이
나는 정말 뒤도 안돌아보고 오로지 앞만보고 달리는 그렇게 살아왔던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아니다 아니다라는 생각이 슬쩍 슬쩍 들기 시작할 때 이걸 만나게 된거에요
그리고 이게 나만가지고 문제가 안풀리고 사회랑 얽혀있고 이게 결국은 내가 내문제를 가지고
사회로 나가야지만 되나봐 라는 생각을 갖고 강의를 듣게 되었고
저는 글쓰기같은건 워낙 재주가 없어서
글쓰라고그러면
땅만보고 있었고
글을 써라 니속에 있는 얘기를 해라
그러면 굉장히 힘들고 사실 힘든거같아요 그런 작업들은
언젠가는 저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시간들 조차도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어요
글을 쓰라라는 자체도 굉장히 힘들고 나를 보라라는 것들도 사실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근데 어쨌든 제가 요런쪽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지금 사실은 아직도 어려워요
어렵긴 하지만 이쪽이 길이야 길인것 같애 라는 생각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 인것같아요
이분처럼 확 변한것도 아니고
하지만 뭔가가 아니야 이건 여태까지 내가 살아왔던게 내가 정말 아닐지도 몰라
이런 생각은 드는데 그래요 지금 저는
사실은 제가 이동네 산지 10년쯤 된것같아요
바로 옆단지에 사는데 사실 복지관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10년동안 살면서
앞만보고 돈만보고 내집만보고 내새끼만보고 살았어요
세상을 그렇게만 산거에요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잖아요 여러가지 것들을
근데 이게 사춘기가 되고 이러면 집안에 막 문제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문제들이 이제 정말 처음에는 나만의 문제이고
내가 어떻게 하면 되고
그래서 사실은 처음에 개인심리학 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순간 갔더니
아 어쩌면 이거는 아닐지도 몰라라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이제는 제가 조금은 이 기회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머 여기사는 사람들이
나랑 똑같은 사람들이네
그리고 얘기하는 것들도 그런거에요
처음에는 사실은 제가
버스타고 지나다니면서 저쪽에 지나다니면
앞에서 아저씨들이 막 술취해서 쓰러져있고 그러면
사실은 인상찌푸리면서 지나갔어요
아 저사람들은 왜 저렇게 사는거야
대낮부터 왜 술취해서 저러고 있어
응 저거는 그냥 개인탓 아니야?
개인의 능력 이런거 아닐까?
이러면서 인상찌푸리고 지나갔는데
이제는 아닐지도 몰라 아닌것같애
이생각이 든단라는 거에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거를 어떻게 뭘 해야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만큼 사는거는 내가 잘나서 여태껏 사는줄 알았어요
그리고 저사람들은 그사람들이 대낮부터 술마시니까 (그들의 선택)
그런건줄 았았어요
제가좀 무식하게 산거에요 여태까지
선생님이 여태까지 자기 살아온걸 써라 라고 하셨어요
저는 제가 뭐라고 썼냐면은
나는 돈버는일 외에는 관심도 없고
글쓰기라는 시간은 학교에서 조차도 너무너무 지겨웠었는데
이런 글쓰기 시간들 힘들다
사실 그렇게 썼어요
그랬더니 그걸 글로 쓰라는 거에요
아 싫다 힘들다 나는 못쓰겠다
나는 뭐 외워서 시험보라면 자신있고
그런건 자신있지만 이런건 싫다
대학교 갓졸업하고 학원에서 시간강사했었고
그리고나서 컴퓨터회사 들어가서 컴퓨터 프로그래밍했었고요
공장자동화쪽 프로그래밍을 했었어여
일본 왔다갔다 하면서 일본말도 곧잘하고
그러고 살다가 애기가지면서 일을 그만두고 4~5년 쉬가다
그쪽세상으로 가기에는 내가 너무 뒤쳐진것 같고
그러고나서는 학습지 교사를 또 4년 했었고
실적은 별로고 엄마들이 저를 좋아해요
제가 성실하게는 하니까 항상
학습지교사를 그만둔 계기는
제가 몸이 좀 아팠었거든요
몸이 아파서 그만두면서 한 6개월 쉬었고
일하던사람은 일안하면 몸이 근질근질하기때문에
이제는 과외하고 있고
그러고 살아요
교수님을 초청해서 인터넷에 올려 참가비를 받고 재원을 마련하든지
바자회를 해서 재원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어요
지난 3년의 자치회
3년 동안의 인문학 자치회 모임을 통해
그동안
자치회 1기생으로서 3년간의 인문학 자치회를 지금까지는 사랑의 열매의 지원을 받아서
저희가 많은 혜택과 많은 강좌를 들었었던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내년 2013년동에는
그 모금이 (모금회지원이) 끝나는 시점에서
저희들 자체의 자성의 기회가 될것 같아요
스스로 살아나는 방법으로는
지금 인문학 동영상강의를 통해
강의를 초청을 해서 재원을 마련해서
계속적인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계기가 되어서
회원분들이 더욱더 단합되어서
서로 좋은 의견을 주시고 서로 더 발전되는 자치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바자회
자장면을 만든다든지
책나눔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재능이 많아요
재능기부도 받고
간호사
김진섭씨는 문집만드는데 재능을 기부하신다거나
여러 재능있는 분들이 다 계시고
임용고시합격
컴퓨터그래픽
내년부터는 더 활성화된 조직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을봉사단을 만들어 가가호호방문하는 기회가 되어
내가 행복해지는 거에요
내가 행복해질라고 하는거지
그분들에게 행복을 주는 거는 그분들
우리가 행복해지는 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인문학은 나에게
이성회복과 모든학문의 기본이다.
지침돌이었다. 50살이되어서 내가 살아야하는
물음표다.
나의 살아가는 힘이다.
인문학은 나에게 관계다. 인문학에 나오면서 나의 변화가 행복해졌고 즐거워졌고 또 행복해질것이다.
인문학은 나에게 삶의 지혜를 주고있다. 같은 현상이라도 한가지 시선으로 보는게 아니고 여러가지시선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통찰력면에서 도움을 받고있는것 같다.
인문학은 나에게 50대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할것을 알려주는 지침돌이었다. 그래서 정말 죽을때에는 행복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인문학은 나에게 내가 여태까지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을 다시한번 의심하게 해주는 나에게 물음표이다.
인문학은 나에게 살아가는 힘이다. 앞으로 계속 전진만 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가야할 곳을 알려주고 길을 열어주고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길이다.
인문학은 관계다
사랑해요
케어하고 돌아가시는 것들을 많이하거든요
간호사들간에
간호사들이 조금 예민하고 그런데
선생님들한테 책도빌려주고
심리학을 한다고 하니까 호감도 가지고
저는 강서인문학커뮤니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얘기를 해보려구요
인문학을 시작하고 지역내 기관들의 변화 네트워크의 진행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나왔습니다.
사회복지사인데 주로 임대아파트에서 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김원중실장님을 알게됐죠
알게되면서
그냥 강서구라는 지역에 대한 많이 생각하게 됐죠
강서구내의 임대주택엔 조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난한 분들이 많이 사는데
이분들의 삶의 변화를 어떻게 가져갈건가 이런고민을 하면서
인문학에 대해서 서로 많이 얘기하게 되었죠
왜하필 인문학이에요
방법이 여러가지 있었을텐데
임대아파트에서 일을하면서 가장 답답했던건
술을 드시던 알코올주민들은 배에 복수차서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같이살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삶의 절박감속에서 또 좌절하기도 하고
지역의 변화도 없고 삶의 변화도 참 찾기 힘든 그런 동네였어요
그러면서 내가 하고 있는일이 과연 이분들의 삶에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는가
고민을 하면서
사람의 변화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그건 생각과 인식의 변화다 그건 행동의 변화까지 이어질 것 같다.
이런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우리가 강서구내에서 하고 있는 교육의 내용을 봤을때
너무 기술적인 교육이거나 이분들을 앉혀놓고
막 전달하는 강의식 교육이 굉장히 많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어요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얼쇼리스에서 클레멘트 코스를 통해서 인문학이 시작됐는데
거기서의 인문학은 정치성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힘 힘을 갖는거죠 그래서 내가만난 주민들 안에서도 그 가능성의 힘을 찾아야 겠다
라고해서 인문학을 고민하게 됐어요
왜 같이 시작하게 됐나요
벤치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가난한 주민을 위한 동네변화 지역사회변화 삶의 변화에 대해 얘기하다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것들의 의미가 주민들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부분은 건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2005년에 강서방화지역 자활센터와 정신보건센터
이렇게 같이 세기관이 네트웍을 하면서 강서구에서 인문학을 시작하게 됩니다.
첫번째 시작은 저희들 예산을 가지고 세상알기와 글쓰기로 시작을 했구요
그러다가 조금더 체계적으로 확장을 하고 실무자들의 사업이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운동 교육적 운동으로 시작하자라고해서
공동모금회 3년 지원을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공동모금회 지원을 받아서
서울 강서지역자활센터
강서방화지역자활센터
가양5종합사회복지관
아이쿱 소비자협동조합
이렇게 네 단체가 네트웍을 해서 시작하게 됐구요
그러면서 저희가
인문학을 주민들과 같이 토론식으로 또 서면적으로 주민들의 삶을 연관해서 설명해주실 강사분을 모집을 했는데
그부분에서 굉장히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교육해주시는 강사분들이
계속 강의만 하시는거죠
그래서 우리 한국사회는 인문학 수업을 하더라도 아직 강사분들도 준비가 안됐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가 매년 강사분을 매년 바꿨어요
매년 바꾸면서 디자인도 다시했죠
그래서 우리는 일방적 강의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전에 는 참여하는 주민들의 삶을 나누고
그 삶속에서 서로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삶나눔시간을 가졌고요
그리고 강사분의 강의와 함께 참여주민이 꼭 토론을 하는 시간을 디자인하게됐죠
그리고 저희 강서인문학 커뮤니티를 시작할 때 저의 생각은
그냥 인문학교육만 하는게 아니다
인문학교육을 통해서 참여주민들간의 자치적인 힘을 가지고
인문학 자치회가 조직이 돼서
결국 이게 강서구 지역사회의 대안적인 교육운동으로 확장하도록 인큐베이팅을 하자라는 비젼을 갖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강서인문학 커뮤니티의 정체성
주민이 갖는 힘은 어떻게 보면 주민 이 자신의 삶에 무기력한 그리고 무가치한 것들에 대해서 그것들을
자기가 성찰하고 해석하는 힘
그리고 자기 주위의 이웃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고
자기를 바로 주체적으로 세우는 힘
그리고 지역사회문제 세상의 문제를
나의 삶과 연관성속에서 생각하는 힘
이런 힘들 속에서 관계를 만들고 조직을 만들어서
대안적인 지역사회 운동을 하는 그런 비전을 계속 꿈꾸고 있습니다.
3년동안 인문학 교육을 통해서 자치회가 생겼고 그 자치회 분들이
스스로 포럼이나 영화제나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시구요
내년에 공동모금회 지원이 끝나더라도
자치회 분들이 계속 자치회 분들의 돈으로
그리고 지역의 후원의 힘으로 인문학교육을 계속 진행할 계획을 갖고 계시고
그런 부분에서 네트웍을 했던 실무자들은 계속 옆에서 함께 파트너로 지원하는 그림을 갖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랄까
진행상에 있어서 주안점을 두고 예를들어서 행사를 한다고 했을때
이프로그램의 취지에 맞게끔 방향설정 하는 것들
이런것들을 같이 의논하는 과정에 많이 참여를 했고요
그런과정에서 강서인문학 커뮤니티가 체계화된 과정들을 갖춰나가는데 지원했다고 하면 지원했죠
주민들과의 인문학은 내공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지식을 가지고 전달하는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삶과 그 사람들의 얘기를 끄집어내되는거거든요
그런것들이라는건
그사람하고 교감하는 능력이 있어야하고
교감속에서 그사람이 담고있는 자기의 모습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이건 그냥뭐 철학공부했다고 해서 철학이 되는게 아니라
그 철학이 자기한테 체화되갖고 그걸 상대편을 바라봐야 되는거거든요
그런내공이좀 필요한데
저희가 한 3년동안 진행하면서
강사분들이 그렇게 까지 내공이있게 가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교감하는 능력이랄까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 강사분들이 좀 많이 오신것 같아요
일반 어떤 사회 경제에 대한이야기도
그분들의 생활에 관계된이야기로 끌고 가는 것들이 괜찮았죠
나무판 - 명함 - 글귀
작년에 저희 센터에서 상반기 교육 마지막 끝날 때
글귀를 써주시면 매달아 놓겠다고 했는데 매달아 놓았어요
네트워크
처음에 세개정도의 기관만 가지고 네트웍을 하는데
사실 인문학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면 어느정도 수요가 있어야 하잖아요
수요를 끄집어 내려면 몇개의 기관이 필요하겠다
마침 아이쿱강서생협이 작년인가부터
강서구 방화동에서 생협활동을 시작한거에요
이년전인가
그때마침 저희가 제안을 드려갖고
강서 생협이 들어오고 기존의 또하나 우리지역에 있는 자활센터 가 있는데
거기도좀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는데
또하나 의도는 그런 네트워크상의 실무진들의 모임이
주민들하고 모임하고 또다른 그런 전망을 갖고자했던건 있어요
뭐냐하면
지역의 주민운동이랄까 지역운동을 심도있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보자
고 했던거죠
나름대로 그게 계기가돼서 여기 가양5에 마을도서관도 만들고 마을카페도 만들고
그담에 또 지금
그게 또 인연이 되어서 지역활동가 학생모임이 있어서
같이 참여하게되고
그렇게 좀 진보를좀 했고
전체적으로 강서지역사회 네트워크라는게 가칭으로 결성이 됐어요
그래서 그 가칭으로 만들어진 강서지역넷이
또하나의 사업환경
이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해서 협동조합교육도 같이한번 준비해서 진행했고
이게 첫시작은 강서인문학 커뮤니티라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번져나갔다고 생각이 들어요
내년에는 좀더 지역네트워크를 통한 활동들이 좀 활성화 되고
좀더 지역주민들하고 좀더 같이하는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거의 출발은 이 강서인문학 커뮤니티인데
실제적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려면 이 주민이
강서인문학 커뮤니티가 하나의 입문과정이 되야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서로의 인식과 바라보는 관점과 이런것들이 얼추 비슷해야지만 일의 응집력이 생기거든요
그거의 관문을 어디에 둘거냐
주민들의 다양한 어떤 관점과 욕구들이 존재하겠는데
그런것들을 걸러주는 작업을 여과과정이 필요하다 생각하거든요
지역사회운동에 주민들이 참여하기위한 전과정으로서 이 강서인문학커뮤니티가 필요한것이 아니냐란 생각이 듭니다.
주민들 이야기 들으면서 어땠나....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그분들에게 어떤 영향력과 자극을 줬다는 것에서 의의를 갖지만
며칠전에 인문학포럼을 하면서
김찬옥교수가 했던말이 생각나는데
인문학은 즐거워갖고는 안돼는거거든요
괴로움이있어야된다는 얘기를 하는거에요 괴로움
뭐냐하면 인문학은 자기에 대한
자기를 대면하고 가지를 바라보는거거든요
단독자로서 자기모습도 보기도하지만
관계속에서 영향받은 나를 보게되는거죠
그 안에서 왜곡된 자아의 자기모습도 있게되는거라는말이죠
근데 이걸 걷어내는 작업이
자기의 자존감을 세우기위한 과정들로서 인문학이 역할을 하지만
또하나 자기의 어떤 그런 왜곡된 관점들을 생얼로 대면시켜내는거가 인문학이거든요
그러면 괴로운거에요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이런 관점이 있어야하는거거든요
괴로움이 없다는거는 즐거움만있다는 거는
아직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하게 결합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즐거운거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됐든 시작은 거기선데
즐거움이 있기때문에 서로 관계맺는데
이게 조금더 진전이 될려면 서로만나는게 부담스럽고
서로 만나는게 괴로워야 한차원 높아지지않을까 저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서로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복지관이든 시민단체든 서로 같다라는 것을 확인했잖아
지향이 같다라는 것을 확인했어
그결과로 강서구 지역사회의 네트웍이 형성이 됐어
이게 시발점이라는 얘기를 했고
그 네트웍의 초기과정
네트워크
저같은 경우에는 인문학에 처음 참여할때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없었어요
우선 네트워크에 참여를 하게 됐고
전체적으로 합의를 한부분이
주민들에게 인문학에대해 알리려면
주민분들한테 저희가 인문학을 제대로 알려드리려면
저희 실무자들 사이에도 이해가 필요하겠다 이런 공감이 있었고
그래서 우리도 공부를 좀 해야겠다 학습을 해야겠다는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희망의 인문학이란 책과 희망의 교육학이란 책을 봤어요
그런데 스터디를 실무자들이 먼저 했고
각자 일지를 적어와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그리고 공통된 의견이 나왔던게
인문학은 단순히 교양을 쌓는 수업이 아니다
주민의 힘을 기르는 그런 정치성을 키우는 그런 과정이다
이런부분에대한 합의가 있었고요
그이후에 인제 네트워크 기관
아까말씀하셨듯이
생협제안을 드려서 같이했고
생협에서도 본인들이 생각하는 바가
주민들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부분에서 공감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그런공감이 다 맞아떨어졌고
그래서
처음에 네트워크 구성을 하고
2010년도에 1기 2기 시작할 때 어려움이 좀 있었던게
주민분들이 인문학을 단순히 교양을 쌓는 수업이다
라고 생각을하고 오시는 부분이 많았고
그리고 많이 알려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도가 많이 떨어졌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좀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게 저희가 점차 꾸준히 네트워크 기관에서 처음에 얘기했던 부분
주민의 힘을 키우는 부분 정치성을 키우는부분을 계속해서 저희가 확산시키고
좀 힘들더라도 그부분을 놓치지않고 갔기때문에
2010년도 2011년도 오히려 저희가 초창기에는 오시지 않던 주민들이
더 많이 서로 알음알음 소개로 오시게 되시고
저희가 생각지도 못했던 대기자가 생기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고
이번에 안된다면 다음에는 꼭 하겠으니까
이름좀 적어달라 이런 얘기도 있으셨고
그런 결과로 이런 자치회 모임도있고
저희가 또 네트워크회의를 많이 했어요
우선주민자치회 분들의 그런것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을 어차피 한개의 기관이 하는게 아니라 연계해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서로의 만남이 많아지고 실무자 워크샵도 다녀오고
사람들이 그런게 자주만나다보면 친해지잖아요
실무자들사이에서도 단순히
강서인문학커뮤니티가 단순히 일로써만 만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대해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됐고
서로 걱정하는 거죠
아직까지 시집못간 노처녀에게는 너 언제 시집갈거냐라고 얘기도 해주고
애기를 낳은 분이 있으면 축하한다
결혼하는 분이 있으면 결혼도 축하한다.
뭐 이런부분에 대한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좋은 네트워크가 됐고
그런네트워크를 통해서
강서구지역에는 그런 네트워크가 아얘없었거든요
인문학 네트워크를 통해서 강서지역의 각 단체들이 그런부분의 필요성을 다 공감을 했기 때문에
점점점 더 그런 네트워크가 됐고 그런 시발점은
분명한건 강서인문학 커뮤니티다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을것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 처음에 인문학에대한 인식이 부족했었고
그리고 그런부분까지는 몰랐지만
막상 3년을 돌아보니까 굉장히 중요했던 일이었고
되게 큰일이었구나 라는 부분을 느꼈기때문에
아마 저뿐만아니라 강서인문학 커뮤니티에 참여했던 네트워크실무자분들도 되게
뿌듯함 자긍심 이런것들은 하나정도씩은 갖고 계시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처음에 자문을 받으러
박한용실장님을 만나러 갔는데
인문학을 통해서 만난 기관과 기관의 실무자들이
인문학이 가지고 있는 거는 내향적으로 자기생각들을 많이 표출해야되고 이런과정이잖아요
근데 그런 기관의 실무자들이 회의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기생각들을 피력하고 하는 과정들을
자기를 드러내는 과정들이었고 하다보니까
그런 횟수들이 점점 축적되다보니까
이젠 상호간에 어떤거
아 저사람하고 일하면 믿음이 가겠구나
저친구가 뭐하자면 일단은 같이 한다
이런 어떤 생각들이 생긴거 초기의 성과였던것 같고
회의시간이 점점점 짧아졌다
얘기를 길게하지 않고 초점들을 맞춰주니까
하반기 상반기 회의할때 회의의 내용이 밀도있게 진행이 되었다
기관과 기관의 연대의 틀
안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인간적인 신뢰감
이런것들이 많이 축적이 된거같아요
무슨일을 하게 되거나
중간중간에 이런저런일이 많아요
연대라는게 굉장히
서로가 상호간에 많이 신경써야되잖아요
좀더 성실해야되고
기관에서 무슨일을 하게 되면
이쪽기관에 문의를 해보고 알아보고 이런과정들이 있게되고
그런신뢰와 연대의 틀이 만들어진 게 큰성과였던거 같고
그이후에 결정적으로 지역활동가 모임이라는 그런 학습모임이 계기가 되갔고요
좀더 많은 지역의 단체들을 만날 수 있는 토대가 됐던거에요
왜냐
우리가좀 인문학커뮤니티를 통해서 쌓은 어떤 그런 신뢰감과 연태의 틀이 있다보니까
그거가 좀더 확대되서 좀더 많은 지역주민
또는 그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기관들을 만나더라도
또 나름대로 어느정도 틀은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가지게 된거죠
그렇게 급하게 가지는 않을려고
천천히 가되 함께간다는 생각들 이런생각들을 이런것들을 만들어지고해갔고
저희 기관에 목공 주민들 목공 체험교육도 오시고
조합원들이 저희 목공소에 목공교육받으러오면
7월달부터 이추운 겨울때까지 저녁7시부터 9시까지 받으러 오시기도하고
이런것들은 그런어떤 신뢰의 토대가 되지 않으면 힘들었던것 같은데
어찌됐든
시작은 이 인문학커뮤티를 통해서 시작이 됐다
하는거가 큰 성과였던것 같아요
대안적인 지역사회운동을 하는 그런 비전을 꿈꾸고 있습니다.
3년동안 인문학교육을 통해서 자치회란 조직이 생겼고
그 자치회 분들이 스스로 포럼이나 영화제나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시고요
내년에 공동모금회 지원이 끝나더라고 자치회 분들이 계속 자치회분들의 돈으로
그리고 지역의 후원의 힘으로 인문학교육을 계속 진행할 계획을 갖고 계시고
그런부분에서 네트웍을했던 실무자들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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