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의 첫날 아침
버스를 타고 '포카라' 라는 관광지로 왔다
8시간 중 3시간 정도는
같이 떠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가다가 다들 잠이 들 즈음엔 운전사 바로 뒷자리로 옮겨 차창너머 삶을 구경하였다.
버스가 천천히 가다 멈추면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눈에 띄는 장면을 손이 가는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길가 수돗가에서
거품을 내며 긴 생머리를 감고 있는 사람이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남동생처럼 보이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표정을 짓는 걸 느끼고서야 나는 남의 목욕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순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줌 아웃되어 보이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카메라로 촬영이라도 하고 있었으면
무척 부끄러웠을 것 같은 장면이 소년의 입장이 되어 반복해서 떠오른다.
유리벽을 방패삼아 관계의 서먹함을 고민하지 않게 하는 관광객이 된 것이 무척 미안했다.
사과할 틈도 없이 버스창의 스크린은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계속 흘려보낸다.
나는 유리창에 바짝 붙어 앉아
어려서 했던 오락실 게임 중에 자동차에서 긴 팔이 나와 떨어진 물건을 집어내듯
하얀색 만년설을 카메라로 잡고, 빨간색이 유난히 많은 빨래,
달려오는 화물차의 요란한 그림아트,
건물에 칠해져 있는 페인트색등에 반응했다.
오늘이 네팔 국민들 빨래하는 날인가?
옥상에, 들판에 볕이 드는 곳이면 널려 있는 빨래가 만국기처럼 계속 이어져 있고,
밝은 대낮에 물이 흐르는 곳이면 목욕과 빨래를 하고 있는 여성들이 있었다.
손으로 지은 집에서,
뼈대만 세워진 곳에 빨래를 널고 있거나,
풀이나 나뭇가지에도 걸린 빨래들...
신이 많은 나라라고 하더니 '오늘은 목욕의 신, 빨래의 신'이 있는 날인가 보군요.
운 좋게 우리 숙소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하게 된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책을 쓴
서윤미 작가에게 빨래와 여인의 삶을 신화와 연결시켜 물었다.
흐린 날이 계속 되다가 이렇게 날이 좋으면,
네팔의 여성들은 아침 일찍 부터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고,
찬 물이 조금이라도 뎁혀진 낮에는 빨래와 목욕을 하는 고단한 삶의 얘기를 들었다.
물이 차니 조금이라도 볕이 좋은 날 살림을 하는 게 당연한 건데 상상을 못하다니
입장을 바꿔보려 노력을 해도 보이지 않는 관광객의 한계를 느꼈다.
과일을 먹을래? 악기를 살래?
중국말 한국말로 물건을 팔기 위해 생존의 외국어로 말을 거는 네팔 사람들에게
'아까 차창 밖으로 구경한 것이 미안했어요' 라는 뜻이 담긴 눈 인사를 하였다.
나는 아직 높은 희말라야 까진 관심을 못 갖고
버스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눈 높이를 맞춘 것에 안도하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으로만 만나게 될지,
서로의 안에 있는 신들을 만나게 될지 산행을 앞둔 새벽에 뒤척이며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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