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영상/촬영스크립트(tape프리뷰)

사할린 징용 영주귀국자 사회적응프로그램 '은빛사랑'

이감동 2015. 12. 11. 17:02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오지 않는 귀국선을 기다리다 
정착해 버린 
사할린 강제 징용 한인들

반 세기가 넘도록 그리워 했던 
고향땅은 이미 

어머니 아버지 없는 
낯설은 땅 

사할린 가족과도 이별
추억속의 가족과도 이별 
이별로 가득찬 이들의 삶 

그러나 
새로 시작하는 삶 입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밤마다 뒤척이며 
돌아눕고 있구나 
그대 있는 곳 까지
가다가 
끝내 철석 철썩 
파도 소리고 변하는 내 목소리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따시면 앉아 있고 
여름엔 항상 앉아 있어

열 두 살에  들어갔거든요 
1945년도에 들어갔어요 
5월달에 들어갔잖아요

3달있으면.. 광복인데.

이거 안 쓰면 못 다녀 
털 옷 입고 
털신 신고 

45년동안 딱히 
돌아가신 날도 몰랐고 

45년동안 캄캄하게 
아버지를 일본 놈들에게 빼앗겼다

누구의 책임이며
누구의 잘못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세계 만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은 얘기하련다
 
1935년에 우리 아버지는 
고향을 두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 징역 명령으로 
강제 연행되어 
혹한 이국땅에서 탄광 노동자로 고역을 당하였다

우리 가족은 어린 아이들 뿐이었으며 
어머니 혼자서 다섯 명의 자녀들을 
입혀 살 길이 없었다 

아버지 없는 생활을 하였다. 

1940년 6월에 
아버지가 계신 탄광으로 오게 되었다. 
영하 40도가 넘는 
곳에 끌려가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압박을 받으며 자유 없는 생활을 강요당한 것은 
나라없는 민족들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우리 아버지를 가장 위험한 현 
야마이치 탄광으로 제 2차 징용으로 연행되어 갔다. 

1943년 9월의 일인데 

조선의 탄부들을 갑자기 연행 하였다. 

가족을 가라도에 두고 끌려간 것이다. 
이것이 두번째로 우리 형제 남매를 
아버지 없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형제는 영원이 아버지를 일본제국에 빼앗끼고 말았다. '

아버지와 작별할때 이거지 
가족사진 

어머니는 

사진 못 찍고.. 

이때 우리하고 아버지 하고 작별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