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기관은 그래도 넉넉한 기관이라고 보수를 좀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이고, 보너스가 있는 곳이고, 토요일은 노는 곳이고, 그것이 그 당시 사회사업기관으로 그것이 외국원조기관들 입니다. 60년대 내가 대학을 졸업 맞고 처음 들어온 곳도 캐나다 유니테리언 봉사회 약칭 USC에 입사하였다.
그 당시에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를 마실 수 있고, 토요일 날 놀 수 있고, 1년에 한번씩 또는 두 번씩 워커힐에 가서 카바라고 해서 주한외국원조단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년에 한번씩 년차 모임이 있어서 그 곳에서 현재 윈첼이라고 나오는 도넛츠를 먹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원조기관에 있었기에 NMC(중앙의료원)를 통해 스칸드나비아 클럽이라고 해서 지금 지겹게 먹는 뷔페를 처음 거기에서 먹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것도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 멤버쉽을 가진 사람이 예약을 해 줘야지만 바이킹 뷔페를 먹을 수 있는 그런 시절 입니다.
그러구 외국원조기관에 대학을 처음 졸업 맞고 직장에 들어가니까 화장실이 수세식 변소예요. 수세식 변소인데 아무도 그 수세식 변소를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올라타서 봐야 하는지 내려서 봐야 하는지 그러던 것이 모르던 시절이 그게 60년대예요.
내가 66년도 7월 1일부터 사회복지 필드에 일하기 시작했는데, 여러분이 오신 이 북부사회복지관에 건물을 처음 지어놓고 수세식 변소를 여기다 지어 놨더니 그게 82년도에 지어서 83년도에 개관을 했는데, 83년도에 여기에 수세식 변소가 들어왔더니 바로 그 현상(올라타서 봐야 하는지 내려서 봐야 하는지 그러던 것이 모르던 시절)이 일어나는 우리나라 그런 시절 이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풍요 속에서 일할 수 있지만은, 그래서 처음에 모 대학에 교수가 제가 여기에다 건물에 수세식 변소를 짓고 이 건물을 했을 때 대학 교수가 와 보고서는 호화판으로 지었다 사회복지관을 아주 호화판으로 지어놨다고 그래서 나하고 대판 싸운 적이 있거든요. 멱살잡이까지 하면서요.
그 당시에 잘 모르고.. 결국은 나는 지금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러분들 지금 이 건물 봐서 호화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굉장히 그 이후에 수선하고 수선하고 개소하고 지금은 여러분들 들어오면서 봤는데 엘리베이터 집어넣고 있는 상태인데 물론 선두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내가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사회복지 시설에 에어콘을 처음에 집어넣어 에어콘을 가동하도록 했고, 수세식 변소를 넣었지만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의 문화적인 지체현상, 영세지역에 집단 영세지역이거든요. 여기가요. 영세지역에 들어왔을 때 문화적인 지체현상.
꼭 우리가 사람을 모아놓고 이렇게 가르친다는 것만을 가지고 사회교육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이용해 볼 수 있을 때 스스로 그것을 개척해 갈 수 있는 방법. 그것이 하나의 방법이거든요. 그래서 추호도 수세식 변소를 넣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고 그 당시에 그 사람과 자신있게 멱살잡이 해 대학교수와 싸우고 다음부터 그런 소리하고 다니면 가만히 안 놔두겠다. 보조 받은 보건복지부에 가서 호화판으로 집지어 놓고 돈을 줬다고 아주 거세게 항의까지 하던 사람이 있었던 시기예요.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나는 무엇이냐 하면은. 사회복지 시설에 여러분이 지금 여기 와보면 깨끗하게 치장되어 있고, 돌도 붙였고 좀 변화를 시켰는데 할 수 있으면 하겠다.
그래서 금년에 고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여자화장실에 비데 집어넣어 해서 비데 들어가요. 아마 사회복지 시설에 비데 들어가는 것도 또 첨 일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런 반응이 나올까봐 걱정은 하요. 그렇지만은 사회복지 시설에 모든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리세션 해야 해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만들어 줘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 마다 다는 못 집어넣지만 남자화장실 한 군데 여자화장실 두 군데 집어넣어 줬어요. 필요한 사람은 와서 활용할 수 있고 이것도 또 교육이예요. 지금 또 비데를 설치해 놓고 거기다 비데를 사용하는 방법을 아주 크게 써 잘 붙여라 노인네들이 이용하니까 글자도 좀 노인네들이 볼 수 있게끔 지금 비데가 자꾸 문제가 일어나서 아직 제대로 안 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될 겁니다. 그래서 앉으면 아 요고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게끔 해 놓았다. 참고로 그런 이야기를 하구요.
아 제가 그 우리 한국봉사회에 여러분들 지금 한국봉사회 저거(설명서)를 줬을 거예요. 요고 잠깐만요. 그래서 요고를 조금 설명을 우리가 설명을 드릴게요. 이것이 뭐를 여러분들이 원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여기 날 찾아왔던 사람. 회장이죠. 여기 우편에 어떻게 되는거야? 회장이 따로 있어요? (웃음)
양원석 : 따로 따로 없구요.
김종길 : 차 드세요.
양원석 : 지.. 지 지도 하는..
김종길
우리 한국봉사회에 대학을 졸업 맞고 한국봉사회에. 지금 한국봉사회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만 캐나다유니테리언 봉사회 외국원조기관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연혁을 여러분들 보시면 캐나다유니테리언 봉사회 한국지원이라고 썼는데 인제 캐나다유니테리언 봉사회를 나중에 이름을 캐나다유니테리언 봉사회 지원하는 일부 자금을 받아가지고 법인을 만듭니다. 사회복지법인. 한국봉사회. (에) 그 당시 제가 기획실장을 했을 때 제가 보건복지부를 뛰어다니면서 이게 1977년에 사회복지법인 한국봉사회를 만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법인을 정부가 해 주지 않는 시절입니다. 법인인가를. 근데 보건복지부에 뛰어 들어가서 굉장히 설득을 해 가지고 외국원조기관이 철수 하려면 국내 법인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우리 : 음
김종길
그래서 인제 그걸 해 가지고 제가 복지법인 한국봉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근데 인제 그 말을 하기 전에 지금 우리 두 분들한테 잠깐 얘기했는데 여러분들이 이 지금 찾아다니는 것이 사회복지 1세대를 찾아다니는데 끼인 데에 불과하거든요. 사실 나는 사회복지 1세대가 아니예요.
어디서 어느 시점에서 구분해야 되는지는 모르지만은 우리나라에 사회복지 발전사를 보면 물론 역사적으로 어떤 사회복지가 가난과 질병에 대한 대처. 쉽게 이야기하면은 여러분들한테 내가 사회복지 개념을 묻는다 라면은 각각의 이야기가 나올텐데 나는 항상 쉽게 이야기를 합니다. 가난과 질병에 대한 대처. 예. 가난을 위해서는 그 가난이라는 개념을 조금 포괄적 개념으로 봤을 때, 그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전문적인 영역인 것이죠.
질병. 마찬가지죠. 사람의 행복 우리가 쉽게 사회복지를 이야기 할 때,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죠. 근데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활동 중에 사람의 아픔을 해결하는 것만큼 가장 좋은 것이 어디 있어요?
사람의 배고픔만큼을 해결하는 방법. 그런 신념에다가 초점을 맞춰가고 일을 하던 시절인데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 역사적으로 아주 초기 인간이 태어나서부터 사회복지라는 것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인제 그 가난에 즉, 가난에 대한 접근하는 방법에 있어서 어느 시점을 계기로 하여 변화가 생겼다.
그것이 뭐냐면 6.25라는 걸 계기로 하여 대량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도움을 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외국에 원조가 들어와서 지금 당장 우리가 느끼고 있는 지금 모 많은 수재가 난 지역에 우리가 그 많은 사람이 자원봉사를 가고 저기 후원금을 내고 이러한 이제 우리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많은 원조가 많이 들어오던 시절이죠.
1950년도 6.25를 계기로 해가지고 들어온 것이 있습니다. 근데 이것이 인제 우리나라 국내에 들어온 외국원조기관이 상당히 큰 기관이 있었는데, 5대 우리가 쉽게 이야기해서 그 당시 여러분들은 별관심이 없는지 모르지만은 5대 외국원조기관. 그래서 국내 5대 큰 사회복지기관들이 있었어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그 월드비전. 월드비전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죠. 세계선명회. 지금은 월드비전 그것이 큰 단체였고, 그 다음에 CCF. 그 당시에 CCF라고 했는데 지금은 한국복지재단이라고 인제 이름이 바뀌어서 일하고 있죠, 그 다음에 컨패션이라고 그래서 외국원조기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제 내가 알기로는 없어진 걸루 거의 없어진 걸루 그 다음 원조기관으로 그 뒤 인제 조그마한 것으로 어덕션 에이전스으로는 홀트 아동복지회가 생겼고, 근데 어덕션 에이전스라고 하는 것은 외국원조기관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들어가지 않고, 기독교세계봉사회라는 것이 있었어요. 기독교. 그런데 그것도 지금은 거의 없어졌어요.
그 다음이 순번으로 봐서 다섯 번째 해당되는 것이 USC라고 해서 캐나다 유니테리언 봉사회 그니까 Unitarian Service Community of Canada라고 해서 유니테리언 서비스 이것이 원조기관인데 그 당시 이러한 원조기관은 60년대까지. 60년대까지는 엄청난 일을 했던 곳입니다.
어떤 시기에 일을 했냐면은 주로 인제 뭐 이제 가족복지를 중심으로 하는 FPP라고 해서 가족복지재단이라는 가족기독교세계봉사회는 주로 이제 가정에 있는 사람을 많이 돕는 기관이였고, 월드비전 컴페션 CCF는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아동들을 돕는 것입니다.
USC는 양쪽을 다 했었어요. 그니까 피난인 전쟁미망인들을 중심으로 한 자활 프로그램을 돕는 것하고, 서울 시내에 있는 7개 보육원을 선택해서 돕는 그런데 인제 대부분이 외국원조기관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하면 스폰서쉽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지금 우리나라 말로 불우아동결연사업입니다. 그런 스폰서쉽 프로그램. 캐나다 기관은 캐나다 기관 주로 미국기관이 대중을 이루고 있었는데 거기 보면 캐나다 기관이 하나 끼여 있었는데 여기가 제정이 제일 열악합니다. 국력으로 봐서는 미국과 캐나다를 비교해 보면 다르니까 그래서 대부분 본부에서 미국에서 스폰서쉽 에이전시 같은 경우는 모금을 합니다. 아동들에게 모금을 하고 운영비를 일부 떼고 그 다음에 한국에 와서 떨어지는 돈이 그 기관 마다 차이가 있지만 7$에서 10$ 사이 그 당시 돈으로 고아 한 명당 결연이 되면은 7$~10$ 사이 지금 10$이라고 하면 얼마죠?
우리 : 음
김종길
한 8500원 정도 되죠. 환율이 기준 환율로 봐서 9000원이 안 되는데 10$이라고 하면 그것을 보육원에 줬을 때 내가 석사 논문을 67년도에 썼는데 그 때 내가 조사해 가지고 석사 논문 쓸 때 조사해 보니까 60 몇 년도에 어떤 시설에 운영비를 분석해 보니까 세 군데를 해 가지고 전체 운영비가 얼마인데 그 외국원조기관에서 스폰서쉽으로 받아가지고 쓰여지는 돈이 얼마냐 하면 60%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럼 엄청난 돈이지요. 네?
우리 : 네
김종길
지금 우리 여기 학생도 있고 지금 실무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죠? 근데 지금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 연봉 얼마 받죠? 연봉.. 대략..
양원석 : 대략 초창기에 1500백 정도
김종길
1500이면 한달에 한 130만원 선
우리 : 예
김종길
충분히 넘죠. 네? 한 1200 또는 1300정도 되면 되는데 내가 62년도 7월 1일부로 대학을 나와 가지고 여기 그 아까 이야기 한 것 그래도 그 당시 취직이 잘 되는 곳이고, 우수한 사람이 사회복지학과를 갔다. 그 시절에 그 시절에 내가 대학을 딱 졸업하고 처음 취직했을 때 받은 돈이 원봉 보수 수당 다 합쳐서 받은 돈이 70$ 정도 한달에 받은 돈이 70$ 정도인데 그 당시 대학을 같이 나와 가지고 조흥에 들어간 친구의 배를 받았어요.
우리 : 아
김종길
그러면 이제 물가를 봐가지고 어느 시절이라고 할 수 있죠. 얼마 전에 그 지금 서남아시아 쪽에 갈 기회가 있어가지고 그런 측면을 집중적으로 봤더니 60년대 우리나라와 같은 캄보디아, 베트남 머 인도 이런 쪽으로 보통 거기 하루 일당을 많이 받는 데가 1.5$에서 1$부터 많아야 2$ 그러면 지금 그 당시 우리와 비슷한 거죠. 그러니까 왜 지금 이런 이야기 하냐하면 경제발전이라는 것이 아무리 뭐 복지 뭐. 나는 평생을 복지 분야에서 일을 해 왔는데 경제성장 없는 복지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제가 생각에는 내가 보기에는 말입니다. 그러한 것을 나누어지는데 아까 이야기 했는데 그렇게 하던 시절이 대부분 1세대가 외국 원조를 받아서 하던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게 1세대가 아닌가. 그래서 6.25를 계기로 해서 원조가 많이 들어왔고 뭐 원조를 가지고 그것을 배분을 하다 보니까 문제가 많이 일어났고, 횡령사건도 일어났고, 빼돌리기도 일어났고 제대로 저거가 안 되니까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기에는 이걸 빨리 해야 하니까 단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을 했고 처음에 사회복지 이렇게 여러분 이야기하면 선배들한테 두들겨 맞을 이야긴데 처음 이렇게 보면 처음에 초창기 리더들 보면 대부분 영어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교육은 무엇을 받았던 간에 영어를 잘하면 대개 외국원조 기관에서 장이 되어 있고 그 사람들에 의해 사회복지 분야가 이루어졌고, 사회복지 분야를 하다보니까 교육이 필요했다고 불리워지는 거고. 그러다 보면 그 사람들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가 곤란한 시절이 《그러니까 물이 들었으니까》 그 분들은 대부분 단기교육을 받아서 뭐 국립 사회복지훈 그 당시에는 사회복지훈련원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인제 쭈욱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다가 보건사회연구원으로 넘어갔다가 지금은 사회복지 전문훈련기관으로는 없어요. 우리 그 당시에는 사회복지훈련기관이라고 있어가지고 훈련원이라고 해서 보건복지부의 이사관급이 원장이 되어가지고 집중적으로 연수 시키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 학교도 신학교나 종교학과 이런데서 단기적으로 기독교 사회복지학부터 사회복지 공부가 생겼고 그러면은 60년대 초에 들어와서는 50년대를 그렇게 지나와서 60년대 초로 왔을 때 아 정상적으로 대학에서 전문교육 시켜야 되겠구나 그래서 우리를 가르쳐 준 스승들 그 분들이 지금은 다 은퇴하신 분들이죠. 내가 몇 살쯤 되어 보여요?
우리 : 음...
김종길
1세대라고 찾아 왔는데 내가 아까 왜 1세대라 그러면 70이 넘어야 되는데 근데 나는 아직 거까지는 아직 안 갔거든요. 우리를 가르쳐 주신 분들이 있어요. 다 돌아가셨죠. 대부분 돌아가시고 은퇴하여 80이 넘어서 그 분들이 외국에서 먼저 공부를 했거나 아니면 다른 공부를 하신 분이 이쪽 사회복지학으로 대개 사회학하신 분이 사회복지 가르치는 이런 식으로 초기단계에는 이런 시절이 있었고 그래서 아까 이야기 했지만 나는 중앙대학교를 나왔는데 우리나라에는 인제 그 사회복지를 제일 먼저 가르친 곳은 지금 중앙신학교 지금 강남사회복지학교. 여기 강남사회복지학교 출신 있으세요? 강남사회복지학교가 초기에 그것을 했는데 강남사회복지학교 전문교육 발전에 많은 공헌도 했고 많은 흠집도 냈고, 아마 선배들한테 들어보면 그런게 있을꺼예요. 초기에 막 필요하니까 사회적 필요해 의해 막 단기 교육을 시켜서 내 보내기도 했고 이제 그러다 보니까 사회 일반에서 뭐 전문가라는 교육이 그 정도면 전문가냐 이런 리엑션이 나왔어. 전문가라면 어느 영역에 한 부분은 그래도 남과 다른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있었고, 이화여대에 기독교 사회복지학과 라고 처음 시작했다가 사회복지학과로 바뀌었고 50년대 후반, 또 서울대학교가 그 당시 그 무렵에 생겼고, 60년대 초반에 중앙대학교 생겼고, 그 다음에 뒤따라서 지금 성심여대. 성심여대가 생겼고, 그래서 인제 내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전체적으로 사회복지학과가 있는 학과가 한 7개 대학. 7개 대학 정도에서 그 서로 교류가 활발 했어요. 학생끼리도 그렇고 거의 그 시대에 나왔으면 같이 동년배로 나온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다 친구고 이렇고 다 같이 필드에서 만나고 그런 것이 되던 시절인데 그니까 지금 예를 들면 제대로 사회복지학과 4년 공부하고 나온 사람들은 그렇구 그 사회복지 머 예를 들면 자격증이 100번서부터 시작되는 100번 고 언저리에 있는 사람은 대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사람들일 거예요. 100번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장급들 그 전에 아까 이야기 한 비전문가라고 하기에는 곤란하고 완전한 전문가라고 하기도 또 곤란하고 그런 분들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복지 기틀을 마련한 사람. 그 분들을 1세대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 다음에 사회복지 전문분야를 공부하고, 제도를 바꾸려 하고 노력했고 이런 사람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모 우리나라 사회복지 분야에 그 시대에 거기 가서 선배들한테 배웠고 그 분들한테 임상을 배우고 이런 상태에서 능력을 인정받아서 정부로부터도 머 기획이 이루어질 때 위원으로 참여해서 제도 개선에 참여를 했고 그래서 사회복지 사업법 초기 틀을 짜고 만드는데 많은 개입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축조심의위원회에 들어가 가지고 여러분들한테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사회복지 개정에 들어가서 사회복지관이라는 것을 거기에 넣어 놨습니다. 지금도 그 국내에 지금 분명 바뀌어야 하는데 초기에는 뭐냐하면 거기다가 사회복지 사업이라는 뭐 가정복지, 아동복지, 노인복지 집어넣었는데 사회복지관은 머예요? 사회복지관은?
양원석 : 지역
김종길
지역복지죠. 어? 대답이 왜 빨리 안 나와? 사회복지관이라는 것은 시설이예요. 근데 사회복지관 운영사업이라고 집어넣어 놨어요. 그러니까 그게 어휘적인 틀은 안 맞아. 지역사회복지가 들어가면 끝인데 사회복지관 운영사업이라고 해서 아직까지도 안 빠져서 얼마 전에 뺀다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놔 둡시다 내가 그랬거든. 왜냐하면 일선 행정기관은 지역사회복지관 사회복지관 이라고 하면 공무원들은 잘 몰라. 그래서 처음에 사회복지관을 만들기 위해 제도화시키기 위해 뛰어다닐 때 법제처에 가서 경제 기획원에 가서 보조금을 주십시오. 초기에 내가 받은 사람이니까 틀을 짜기 위해서 뛰어다닐 때 사회복지관 운영비를 좀 넣어주십시오. 라고 하면 사회복지관이 뭐냐 그러면 그것부터 설명해야 되. 사회복지관이란 이런 이러한 시설을 이야기 합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그게 왜 필요하냐? 왜냐하면 사회복지관은 치료적 사업보다 예방적 사업을 많이 하는 곳입니다. 맞죠?
우리 : 네
김종길
또 어떤 면에서는 지금 거기 따라 갈런지는 모르지만은 사회복지관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적 경향이 강하지만은 원래는 사회복지관의 역사적인 발전을 보면 이미 개혁적인 곳입니다. 여기가 영국에서 처음 생긴 인보관은 개혁적인 곳 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개혁은 여기서 좀 못하고 접어놓고 정부 돈을 받아갖고 하는데 우리가 개혁을 하고 정부를 상대로 대모를 하고 지금 이야기 하는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저소득층들을 위해서 투쟁을 한다면 보조금을 못 받죠. 살기를 위한 노력은 조금 다르다.
이제 그런 측면 때문에 이제 사회복지관을 틀을 다시 짜야겠다. 아까 이야기한 짜는 것이 우리 선배들은 외국원조기관에 화려한 시절은 우리 선배들이 다 겪었어요. 근데 외국원조가 철수하면서 이제 불행한 시절이 오죠. 이것 뭐냐하면 70년대 초반입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사회복지 시설에 지원해 주는 예산은 확보되어 있는 시기가 안 되었고, 외국원조는 우리나라 경제는 발전되어 가지고 모금하는데, 그 나라에 자기네가 모금하는데 이쪽에 건네주려면 모금을 해야 되는데 한국정부의 간섭이 너무 심하다. 그래서 모금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뭐냐하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경제개발을 하고 한국의 이미지를 많이 세계에 알려 가지고 수출사업을 해야 되는데 한국이 불행한 곳으로 못 살고 못 먹고 지금 여러분들이 보면 외국에 비틀린 것 있죠. 못 먹어서 막 파리 날리고 하는 그런 사진 찍어다가 내 보내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이건 안 되겠다.
그 외국원조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원조물품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벌어먹는 것이 훨씬 낫다. 그래서 규제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이야기고 그러다 보니까 외국원조 기관이 모금을 못하자 한국 사람을 위해서는. 원조기관들이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다 철수하기 시작합니다. 한 100여개의 외국원조기관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막 빠져 나가는 거예요. 우리 선배들 다 딴 곳으로 일자리 찾아 나갔을 때 저는 살아야 되겠기에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래서 인제 사회복지관이라는 것을 완전히 그 틀을 바꿔 버렸습니다. 사회복지관을 그 당시에는 이론적인 뒷받침보다는 내가 또 물론 뭐 여러 가지 사회복지를 공부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흔들림은 없었지만은 우선 직원을 데리고 살아가야 되겠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득을 좀 창출해야겠다. 복지관에서. 그래서 그 부분적으로 복지관에 그 정책사업하고 이런 서비스사업하고 나눴어요. 나눠 가지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회복지에 돈을 좀 벌어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 그게 이제 지금 아마 한 동안 많이 두들겨 맞았던 건데 그게 영세민들을 그 영세로부터 빠져나가게 하는 방법이 뭐가 있겠느냐 그러니까 빈곤이라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 주어야만이 되겠느냐 그것을 사회복지관에서 하겠다.
여러분들 사회복지라는 것을 아까 내가 가난과 질병의 해결이라고 했죠. 가난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이 머가 있겠는가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주는 방법 많이 주는 방법이 있죠. 아니면 스스로 벌어먹도록 하는 방법. 근데 사회복지관에서는 스스로 벌어먹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되겠다. 그게 내 주관 이였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관 프로그램을 그 누가 지금 뭐라 그러더라도 그 동안에 변화는 생겼지만은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에 최초의 프로그램을 제가 만든 사람입니다. 지금의 프로그램을. 그리고 종합사회복지관 간판의 어휘를 처음 붙인 사람이 나고, 그러니까 이 북부종합사회복지관이 모델이 되어서 전국으로 확대 되었는데 그 종합복지관이라는 말을 작명한 사람이 나거든. 내가 작명을 해가지고 올렸어요. 올려가지고 정부로부터 돈을 요만큼만 주면은 이러이러한 일을 해 낼 수 있다. 그것이 뭐냐하면 빈곤 집단지역에 뛰어 들어가서 빈곤한 사람들에 그 빈곤으로부터 빠져나가도록 하겠다.
빈곤의 원인을 크게 조사를 해 보면 그 당시 조사했을 때 사회복지 한 사람이 그것을 조사한 것이 아니라 사회학을 한 사람들 대부분 빈곤은 우리나라 빈곤이 대물림을 하고 있고 어떻게 되고 있다. 그 빈곤의 원인을 보면 그 첫째로 부모로부터 유산이 적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죠. 쉬운 이야기죠. 두 번째로는 학력이 낮다. 그래 딱 보면은 그 당시 규격에 보면 소득은 학력과 정비례한다. 맞죠? 여러분들 지금도 마찬가지야. 아직도 그건 마찬가지야. 대학을 나온 사람, 고등학교 나온 사람, 중학교 나온 사람, 특별한 기능이 없다면 봐서 이런 기관에서 보수를 책정할 때부터 중학교 출신은 첫 봉급이 얼마, 고등학교는 얼마, 대학은 얼마 소득은 학력과 정비례한다. 그래서 복지관에서 그렇다면 이게 빈곤의 원인이라니까 우리가 외국원조를 끝났기 때문에 우리도 물자가 없거든요.
우리 자생적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줄 수가 없는데 학력을 보강해 주는 프로그램을 우리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학력을 보강해 주자. 그래서 초기 사회복지관에 우리 북부복지관 머 이런데 처음 할 때 학력을 보강해 주는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그래서 학력을 보강하기 위해서 야학도 만들었고 여러 가지 뭐. 그 초점을 어디다 맞췄냐 하면은 자. 가난하기 때문에 못해서 학력을 보강할 수 없다면 그게 뭐냐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과외를 못하는 거죠. 그 당시에도 그렇다면 복지관에서 무료 내지 저렴한 비용을 받고 학력을 보강해 주는 프로그램을 하자. 그래서 그 학력을 보강해 주는 접근 방법도 그 케이스 별로 클라이언트 수준에 맞춰서 무슨 과목별 과제를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런 것도 있는 거고 또 어떤 것은 뭐야 아이들이 일하면서 야학에서 중학교 검인정을 볼 수 있다던지 그것도 좀 그렇다면 중학교 실력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차라리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국가 공무원이 월급을 받으면 그걸 가난이라고 우리는 할 수 없을 것 아니냐 그래서 아예 공무원 시험을 가르치자. 취업 공무원 취업반 자원봉사자를 동원해서 그러한 프로그램. 한 그룹을 만들어 이게 사회교육 이예요. 그 당시.
자. 그런데 그 다음에 원인을 보니까 또 뭐냐 기능이 없다 기능 기술이 없다. 기능기술이 없는 사람은 노동현장에 가서도 일당을 그냥 노동만 받지 요즘에 미장이다 무슨 목공이다 뭐 배관공이다 이런 사람 하루 일당을 15만원 받는다면 그냥 품만 가서 나르는 사람은 3만원 4만원 밖에 못 받으니까 기능을 익혀주자. 그래서 복지관에 막 기능프로그램이 도배반, 목공반 뭐 복지관에다가 그 당시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봉제반, 자수반 이게 지금은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안한다고 그래서 저쪽으로 갔어요. 중국으로 가고, 필리핀으로 가고, 베트남으로 가고, 캄보디아로 가고 그래 여기 북부복지관에 그걸 만들어 놓으니까 그걸 들어오려면 새벽부터 번호표를 받아야 했어요. 사람들이 그래서 무슨 봉제반 같으면 친구가 태평양 뭐 그거 인맥 동원해야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태평양 패션에 가서 옷 만드는 것을 좀 하청을 받아다가 일하도록 해서 수입도 창출하게 하고 또 기술도 배우게 하고 그러한 기능반. 또 예를 들면 파출부를 내보내는 것보다는 요리사를 파견하는 것이 돈을 더 많이 받죠. 그래서 목적이 요리반이 만들어진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그러한 목적 하나하나를 다 사회복지와 연결을 시켜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복지관 하는 사람들은 사회복지 안 하는 사람들이 뭐 사회복지 관장한다니까 보니까 어 여기가 돈 되네. 이거 수익 맞네. 이거 수입 맞네. 거기에 접근하는 방법이 우리하고 틀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회적 물의가 일어나니까 왜 복지관에서 복지는 안 하고 자선은 안하고 그러한 것만 하느냐. 그게 이제 많은 복지관이 인제 확대 되니까 그러한 것이 나오는데 내가 언제까지 이걸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흘러가는 것을 조금
양원석 : 음.. 선생님 지금 저희가 질문을 좀 할 것을 준비를 했는데요.
김종길
지금 초창기 과정은 지금 말을 해 줬던 건데. 그래서 (침묵) 예. 조금 요고 요고 정리를 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뭐를 이야기 했지.
양원석 : 복지관 발전
김종길
복지관들이 인제 그 할 때 그렇게 되어 가지고 인제 이 초기 단계에는 재가복지관 3군데 하는 것까지 해서 중대부설사회복지관 또 매 한가지로 7~8개만 우리나라가 복지관을 했었어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일을 하고,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냐 하면 그 노태우 정부가 되면서 캐치 플레이를 뭐를 걸었냐 하면 보통사람들을 걸었거든. 보통사람들이란 것이 위한 것이 무엇이냐 그래서 청와대 인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보통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지원을 위해 무엇을 만들어야 하겠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각 부처에 지시가 내려 보냈어. 각 부처에 내려간 지시는 보건복지부에서는 이것을 모델로 제시 했어. 북부종합사회복지관을. 보통사람들 저 소득층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시설을 이러한 사회복지관이다. 그 때 노태우 정부가 80 몇 년도에 시작이 되었죠? 86년도 가? 그렇죠?
우리들 : 86년도 87년도 88년도...
김종길
응? 88년도는 올림픽이 되었을 때는 전두환이 빠져 나갔죠. 올림픽을 못하고. 86년도과 87년도 일 거예요. 그 무렵에 이제 뭐냐 하면 보통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 그래서 각 부처에 내려갔을 때, 상공부에는 공장형 아파트형 공장, 그 다음에 노동부에서는 직장탁아소, 그 다음에 보건복지부에서는 이 북부사회복지관을 모델로 해서 청와대 저소득 대책반이란게 설립 되었습니다. 저소득 대책반이 설립되어서 신설 시 한 20명, 교수도 참여하고 공무원들도 참여해서 현장을 답사해 보니 아 바로 이거다. 그래서 복지관을 당장 확대시켜라 이렇게 나온 겁니다. 확대시키라고 나와서 그 다음에 그 첫 호가 지금 여기 번동사회복지관인데 아파트 그 왜 영세민 아파트를 짓는데 주변에 지을 수가 없으니까 밑에 아파트 몇 개 호수를 다 헐어 가지고 복지관을 넣어주는 급변하는 그러면서 인제 복지관이라는 개념들을 정리들 해야 되고 그 운영규정도 정해야 되고 그래서 들어와서 설명해라 사회복지관 운영규정을 만들어라 뭐 해서 사회복지관 운영규정을 초안을 제가 만들었어요. 그래 가지고 사회복지관이다. 그런데 아까 여러분들한테 이야기 했던 종합사회복지관이라는 처음 작명했다고 했다고 했는데 북부복지관 종합복지관을 작명하게 된 그 일화는 뭐냐 하면은 그 전에 중앙사회복지관 관장을 제가 했을 때거든요. 중앙사회복지관 현재 없어졌지만은 이 중앙사회복지관 하면서 정부로부터 1년에 800만원 보조금을 받았어요. 그래 받았는데 이것을 짓고서 이것의 운영비 짜니까 연간 한 15000만원이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거기다가 경제기획원에 가서 예산 좀 더 달라고 하니까 사회복지관이 800만원인데 어떻게 한해에 그 1500%를 올려가지고 할 수 있느냐. 그래서 그 사람하고 빠져나가는 길이 뭐냐면 이름을 바꿉시다. 그래서 거기서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 종합사회복지관이야. 그래서 기획원에서 그러구 한 1년 지나다 보니까 기획원에서 다시 들어오래. 종합복지관하고 사회복지관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시오. 하는 거야. 그래 순발력이 있어야해 자꾸. 그 때까지도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순발력이 있어야 해. 그래서 종합복지관은 규모가 이 정도 이 정도 되는 거고, 사회복지관은 이 정도 요정도이다. 그래서 인제 사회복지관 운영 규정에 만들 때 초안에 2000평광 미터 이상, 그 다음에 프로그램 몇 개 이상, 직원 수 몇 명 이상이면 종합사회복지관 가열이다. 그 다음에 몇 평광 미터부터 1000평광 미터부터 2000평광 미터까지고, 프로그램을 몇 개 이상하고, 직원 수가 몇 명이면 사회복지관 나열이다. 그 다음에 그 다음에는 사회복지관형이다. 이렇게 삼등분 했어. 지금은 더 세분화 되었지만은 초기에 그렇게 만든 거야. 그래서 사회복지관까지 되어가지고 사회복지관 운영기준을 만들면서 인구 10만명 당 사회복지관 1개를 넣자. 인구 10만명 당. 그렇게 되니까 서울시가 1000만 이죠. 1000만이 지금 서울시에 한 100개 정도 90 몇 개니까 1200만 정도 인데 그래서 앞으로 조금만 더 늘어나면 너네 이제 사회복지관이 너무 많지 않느냐. 근데 이제 그 당시에는 사회보장 종합복지관 사회복지였는데 그 뒤에 단종 사회복지관이라고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그래서 인제 그 뒤에 뭐 제가 자문을 하고 뭐 할 때에는 사회복지관 10개에 이런 단종복지관 1개를 지어서 뒤에서 백업해주는 종합적인 것은 종합복지관에서 하고 보다 더 전문화 되고 깊이 들어가야 할 부분들 즉, 노인에 일반적인 노인학교를 한다든지 일반적인 것은 사회복지관에서 하고 왜냐하면 접근성이 있어야 되니까 사회복지관에 부담을 놓고 보면은 노인들이 쉽게 와서 놀고 쉽게 와서 할 수 있으면 되는데 그것을 노인복지관을 그 만큼 많이 늘릴 수는 없으니까 노인 복지 프로그램을 사회복지관에서 하고 거기에 뭐 수치료를 받아야 된다던지 모든 전문적 시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구 단위에서 1~2개씩 넣어주면 안 되겠느냐 지금 그런 방향으로 현재 가고 있어요. 그래서 그러한 부분으로 초기에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 다음에 국내 최초의 민자유치 사회복지관 이게 모죠. 건립과정
양원석 : ( ) 근데 중복되는 부분은 안 해주셔도 되구요.
김종길
민자유치 지금 사회복지가 북부복지관이 설립되게 된 것은 사실은 뭐 민자라는 개념도 없었던 거구 캐나다 유니테리안 봉사회가 손을 떼고 떠나면서 그 당시 1억을 줬습니다. 이제 물론 거기 1억 속에 그 여러분들한테 이런 걸 역사적 것이라고 다 이야기하다 보면 누구를 헐뜯고 뭐 이런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그런 걸 이야기 하고 싶지 않고 다만 1억을 줬는데 우리 선배들이 받아가지고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했어요. 그것을 내가 인수를 받아가지고 그 1억을 가지고 여기 땅을 산겁니다. 여기가 인제 영세민 집단 지역 이예요. 정부를 설득을 했고, 정부로부터 아까 이야기한 이러이러한 만한 것을 도와주면은 정부가 가장 힘들어하는 그 영세민들을 이렇게 이렇게 도와주겠다. 결국은 실제 그렇게 해 왔던 거구. 그런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한거니까. 그래서 정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프로그램을 제시한 거죠. 그래서 가장 앞으로 여러분 후배들한테도 이야기 하겠지만 여러분들이 창업하고 여러분들이 사회복지 분야를 키운다 하면은 정부가 가장 고민하는 것을 건들여야 됩니다. 정부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프로그램. 사회문제로 이슈화 되고 있고 가장 고민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내가 당신이 조금 도와주면 해결해 낼 수 있다. 그러면 그 만큼 자신감 있을 때 그 만큼 전문지식을 키울 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는 내가 그래도 여러분들한테 자신 있게 좀 이야기 해주는 게 자기 자랑 같지만은 한국에서 사회복지 큰 프로그램 2개를 제가 개발을 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는 사회복지관. 이것을 모델로 해서 전국에 확대 되고 지금 전국에 400개가 넘잖아요. 사회복지 시설로서는 가장 큰 시설입니다. 다른 수용시설보다도 사회복지관이. 그렇죠? 아니예요?
우리들 : 맞아요.
김종길
그러고 사회복지 교수들한테 가서 내가 요즘에 교수들한테 그 전에 막 그 욕을 해 댔더니 미워하는데 뭐 대학교수협의회 가서도 불러주면 가서 이야기 하고 당신네들 한 것 뭐가 있느냐 남이 하는 거 헐뜯기들 이나 하고 처음에 사회복지관을 만드니까 이론에 맞네 안 맞네 뭐 그래서 자꾸 뜯기만 했거든요. 그래서 그 보다도 사는 방법이 먼저이다. 사는 방법.
아까 내가 이야기 했지만 외국원조는 철수했고 다 해산해야 되는데 해산하면 그 남아 사회복지는 다 없어지는 겁니다. 그 이전에 있던 사회복지관 아무리 잘했어도 다 떠나버리고 정부 돈을 끄집어내고 자원을 동원하지 않았으면 선배들이 아무리 좋은 일을 해 놓아도 소용이 없는 거죠. 근데 정부로부터 제도화 하도록 했고, 제도화해 가지고 사회복지 운영 만들었고, 여기 사회복지 전문요원 있어요? 어. 사회복지 전문 그것도 같이 뭐 다른 사람과 같이 했지만은 마지막 그 문민정부 들어올 때 그 노태우 정부에서 김영삼 정부로 넘어가기 이전에 사회복지사업법에 다가 집어넣은 겁니다.
법에 보호를 받지 않고는 다 그 해산되어야 되니까 통치자의 어떤 그냥 관심사로 두었다면 후임자들은 먼저 사람이 잘 것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없애버리지. 그러니까 제도에 그 당시에 보사부 사람들하고 같이 이야기하기를 이거 여기다 사회복지전문요원이라고 집어넣자. 사회복지사업법에다가. 그래 들어간 겁니다. 법에 들어갔을 때, 제도에 들어갔을 때 그 어쩔 수 없는 거죠. 그 법을 없애기 전까지는. 그래서 여러분들한테 하는 거는 이 민간자원이라는 것이 그 여러분들이 어느 한 부분.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은 넓게 폭 넓은 지식을 가져야 되지만은 자기의 한 부분은 아주 깊이 있게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그것을 제시하고, 자문해 줄 수 있어야 되고, 언제 어느 때라도 이것이 필요 하는데 그 부분을 여러분들이 확대를 하려 한다면 여러분들이 그걸 느낀다면 정부가 고민하는 부분. 손을 대라.
그래서 요즘 내가 자꾸 뭐 저기 우리 저 요번에 농어촌 인지위원으로 들어가면서 거기 가서 계속 이야기 하는 것이 이제는 웰빙만 가지고 이야기 하지말자 이제 우리 수준에 웰다잉까지 하자. 프로그램을. 그래서 지방자치 차원에서 웰다잉 프로그램을 만들어라. 어떻게 생각해요? 근데 웰다잉이라는 것이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죽는 것까지 이야기 하느냐. 근데 모든 사람에 머리에 가치가 와 있어요. 그리고 그 예를 들면 그 웰다잉이라는 것이 무슨 내가 암에 걸려서 내가 뭐 내일 모래 죽는다. 그래서 지금 편하게 살자 그것도 있겠지만 웰다잉이라는 앞으로 내가 죽는다는 내가 죽는 시점이 내가 지금 50을 살아왔으니까 앞으로 20년은 남아 있다. 20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를 생각 해 본다면 좋은 일들이 많습니다. 마찬가지예요. 30대에 있는 사람한테도 자 웰다잉이라는 것을 한 번 잘 준비해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럼 내가 30대에부터 잘 죽기 위해서 지금부터 준비해 나아가야 할 것 아니냐. 그래서 사회복지에서 그 부분에 뛰어 들어가자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지금 이제 직원들한테 자꾸 프로그램화 시켜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 인구가 급격히 인구증가율이 떨어지고 있지요. 그런데 애 낳기 운동을 목표로 해라. 그러니까 애 낳기 운동을 어떻게 하냐면 60년대 70년대 사회복지 분야에 뛰어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 그 당시에 빈곤이라는 것은 너무 많이 낳아 놨기 때문에 빈곤한 겁니다. 수입은 없는데 그것도 있어요. 너무 많으니까 먹이고 가르칠 수 없잖아요. 근데 그 사람들 사고는 제 먹을 것 제가 타고 난다 그러는 사고였거든. 그래서 아마 그 내 영향에 내가 지금 예순다섯 인데 네 명에 비하면 나는 애기가 적어요. 딸만 둘이야. 아마 그 둘이라도 내가 그 시절에 그 시대에 내가 낳아 머릿속에 있을 때 뭐냐 하면 내가 애 낳을 때 결혼해서 애 낳을 때는 아들 둘 딸 하나 낳기 운동이 가족계획 프로그램 이였어. 그래서 셋을 갖기 운동 셋보다도 많이 낳으니까 셋 갖기 운동을 벌인 시절 이였지. 근데 나는 딸 둘을 낳고 끝났거든. 근데 그 당시 뭐냐면 돌아다니면서 가족계획이 필요하다는 강연도 하고 그런 시절인데 씨가 안 먹혀 들어가는데 그게 한 세대가 흘러가니까 이제는 가족계획을 너무 많이 해 가지고 애를 안 낳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족의 구성원이 왜 필요한가를 복지화해서 사회교육사업으로 지역복지 프로그램으로 접근해라.
아직 프로그램 지금 이제 만들고 있어요. 그 뭐 저 여생을 어떻게 여생을 나머지 잔여 여생을 즐겨서 갈 수 있느냐 아니면 그러한 것들을 지금 하는 프로그램을 지금 만들고 있는데 내가 이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민간자원이 이렇게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와 좋은 프로그램이 있을 때 자원이 투여가 되는 것이고 순수 민간자원이 투여가 발생 될 때보다 아니라 정부가 정책화 하도록 해야지 되는 겁니다. 민간의 프로그램은. 그래서 하나의 파일러프 프로그램을 민간이 하는 것인데 이건 뭐냐 하면은 정부가 세금에 의해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가 없으니까 민간이 이러이러한 것을 하면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러구 해 보고 실질적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자료를 제시해서 정부로부터 하여금 정책화 하도록 하면은 그 확대가 될 수 있지 않느냐 그런 측면으로 접근을 한다면 그게 가능하다. 그래서 처음에 제가 뛰어들었던 것은 사회복지관에 뛰어들었고 하나가 불우아동결연사업입니다. 지금 한국복지재단에서 하는 지금 역사를 지우지 말아라 내가 자꾸 거기다 그러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우리가 한 3년 하다가 넘겨 준 겁니다. 그래서 인제 3년 하다가 우리는 원조가 철수되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을 끌어가면 재정적 능력 인력적 능력이 없는데 정부가 정책화 되어 가지고 외국원조가 아까 이야기 했듯 정부가 정책적으로 외국스폰서 기관들을 내보내니까 국내에 보육원들이 정부 돈으로 줘야 되지요. 정부 돈을 못 주니까 보건복지부하고 조인이 되어서 불우아동결연사업을 합시다. 그래서 보사부에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인력 3사람 분의 인력 보조를 받기 시작을 한 겁니다. 서울 시내에 시설 아동을 국내 후원자를 찾아가지고 결연사업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것을 신문에 터트리고 뭐 잘 하다 보니까 아 잘하는 거다. 신문에 터졌죠. 청와대에서 보니까 아 이거 좋은 사업이야. 확대시켜 그래서 공무원 3급 이상은 무조건 가입해 뭐는 무조건 가입해 뭐 하루에 막 후원자가 막 1000명 씩 생기는 거야. 정부에서 막 떠넘기니까 우리 인원은 7~8명인데 근데 우리 여직원 하나가 후원금을 가지고 도망가 버렸어.
우리들 : 아휴 아~
김종길
여직원 하나가 그러니 어떻게 그 때 우리 내가 우리 직원들한테 돈 다 걷어가지고 그걸 메꿔 넣고 이제 그 보조 기관을 도저히 못하겠다. 그리고 우리는 복지관만 하겠다. 정부에다 그래 가지고 그것이 복지재단으로 넘어간 겁니다. 그래 직원까지 다. 다 넘어 갔는데 내가 김석삼 회장한테 역사는 지우지 마세요. 근데 불우아동결연사업을 자기네들이 개발하고 자기네가 한 것으로다. 그러니까 사회복지관도 지금 한국복지재단은 사회복지관이 10 몇 개를 한 20개를 갖고 있는데 그 헐뜯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는 CCF지부라고 해 가지고 그 자기네 스폰서 쉽 프로그램 만들었는데 근데 외국 원조들이 철수될 때 자기네들 고민이 근데 이게 마침 복지관이 생겼으니까 그리 간 것이지. 뭐. 뭐 그건 언제든지 뭐 김석산 회장 얼굴 앞에서도 내가 면박을 주는 거니까. 역사를 지우지는 말아라. 그러나 역사는 있어야 되는 거지요. 네. 그래서 내가 어디 지금 책에다가 쭉 역사 정리를 해 놨어요. 그것은 지우면 안 돼. 역사는 지우면 안 되고 그리고 우리 선배들이 선배들 다 자기네들 떠났다가 떠났다가 여기 자리 잡히니까 어 복지관 내가 하던거야. 이런 식으로. 다 도망갔다가 이게 제자리가 잡히니까. 죽을 고생해서 해 놓으니까 자기네들이 유공자라고 하는 건 그건 잘못 되 있는 거지. 언제든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이것이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또 한 가지 뭐냐 하면 민간기업은 여기 민간기업이라고 했는데 지금껏 여러분들 내가 보는 것은 이러한 것.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낸 것이 처음 받아낸 것이 접니다. 또 이런 건축비도 받아 낸 것도 접니다. 처음 받는 사람이 힘든 거예요. 예산은. 죽을 고생을 해. 근데 그 다음에 누가 받고 나서는 그 다음에 가서는 왜 쟤 줬는데 나 안 줘. 그러면 돼. 왜 쟤 주고 나 안줘 그러면. 왜 너희 불평등하냐. 처음에 만드는 사람은 엄청나게 몇 년을 고생을 해. 그래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그 뭐 하나하나를 자랑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부분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예를 들면 작년에 이거 이거 이렇게 저 리모델링 했는데 이 때까지 리모델링비 없었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이제 그 실무자들이 이거 할 때 뭐 좀 이렇게 막 로비도 하고 그런 것은 있어야 되는 거니까 해서 만들어 냈더니 그 실무자가 이건 전무후무 입니다 그랬거든. 지금 와서 금년부터 예산이 확보 되어 있어. 왜냐하면 왜 쟤 해주고 나 안 해주냐고 하니까. 그러니까 쉽죠. 그래 그거 인제 누구 동원해도 돼. 그리고 대부분 누구를 동원해서 예산 좀 받으려고 하면은 그런 관례가 있나 대부분 물어보는 게 그거거든. 그런 관례 있나? 아 그거 있습니다. 어디가 받아갔습니다. 아 그럼 그것 좀 줘. 거기다가 그러죠 높은 사람 통해 가지고 그렇지요? 그래 관례가 없으면 못해.
그래 그런 식의 이제 자원동원을 해서 사회복지라는 그 자체는 여러분들이 그 너무 학교에서 공부할 때 요즘 난 요즘에는 그래요. 요즘 조금 많은 변화가 있지만은 내 한 마디로 여기 뺑 돌아가 보면 통일적 의견이 안 나오고 통일적 대답이 안 나와 내가 여러분한테 물을깨. 지역사회복지가 무엇이냐 쉽게 이야기 하면 쉽게 대답들 못해 내가 대학에서 강의하고 대학원에서 강의하면서도 다 물어 보면 그래서 나름대로 여러분들한테 한 가지 충고를 해 준다면 그래도 요즘에는 그래도 많이 알려진 것인데 그리고 뭐 전국에 지금 사회복지 대학이 있는 게 180개? 180개라고 그러지요?
이성종 : 255개
우리들 : 어
김종길
어 250개가 넘어 갔어요. 내가 180개까지 알았는데 그 정도로 많이 생겼다 그러면 그 부모도 있을 것이고 형제도 있을 것이고 또 이 뭐 사회복지관도 이렇게 많이 늘어났고, 뭐 노인복지관도 생겼고, 자활후견기관도 생겼고, 이런 것이 많이 생겼으니까 인제 주변에서 사회복지라는 것이 뭔가 하고 이렇게 제가 일어났을 때 자원봉사자들이 이렇게 찾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흐름이 되어야겠죠. 그러한 것이 많이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여러분들이 그래도 일할 수 있는 부분은 있을 꺼예요. 그런데 여러분들한테 충고를 한다면 뭐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또 사회복지 필드에 있다면 자기 나름대로는 어떤 꾀 뚫는 것들이 있어야 된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회복지는 뭐고 거기서 이제 크게 흘러가는 흐름들은 언제 누가 어디서 묻는다 하더라도 자신있게 이야기하고 자신있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된다. 그것이 그리고 그것이 합리적일 때 이건 이 밑바닥은 커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말해 주죠. 내 뭐 어 사회사업 공부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 보면 종종 아휴 잠깐하고 떠나면 되지 뭐 이런 식인데 이건 이제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고 싶어요. 사회복지를 하기 때문에 남보다 많은 비난 받을 수 있을 만큼 보수를 받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 사회복지라는 개념이 거기 흡수되어 있으면 누가 친구들한테 만나서 난 이러이러한 기관에서 일을 하고 그러면 어 너 좋은 일 하는구나 그 만큼은 깍자는 이야기지. 그래도 이제 그것도 이제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래도 이건 전문직업이니까 받을 만큼 대우는 받아야 될 것 아니냐 그걸 여러분들이 자꾸 이제 이야기해 나아가야 됩니다. 사회복지 하니까 조금 받아야 된다는 것보다는 이제는 아까 지금까지는 내가 그랬어요. 야 니들 들어오면 이 만큼 깍아야 될 거 아니냐. 근데 나는 지금 희망상황이 뭐냐하면 이제는 깍지 말고 다 줘야 되겠다 하는 이야기거든. 그래야 좋은 사람이 올 것이고 좋은 사람이 와야지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 아이디어에 맞춰서 희망도 가질 수 있고 나도 사회복지가 사회복지사 이전에 인간이고 인간이니까 나도 결혼하고 나도 자식 낳고 자식 낳으면 내 자식 남들보다 더 잘 먹이고 싶고 더 좋은 거 입히고 누더기 진짜 사회복지 하면 옛날에 사회복지 하는 사람은 옷도 헌거 입어야 되고 어 뭐 이렇게 저 남 보기에 그러면서 뭐 내 아이들은 뭐 얻어다가 몇 명을 먹인다. 나는 종종 뭐 친구들한테 이런저런 걸 맡아 야야 여기 뭐 이러이러한 사람이 있는데 그거 어떻게 돕는 방법 없느냐 그러면 너 그거 관심 갖지 말아라. 나는 그러거든. 야 대한민국 정부 지금 남도 많이 도와줄 수 있는 심지어 북한까지 도와 줄 수 있어. 대한민국 정부 국력이 그 만큼 가 있어. 그러니까 그 아이가 제도권에 들어와서 도움을 받도록 해줘라 우리나라 시설이 비어 있습니다. 지금 어떤 데 많이 비어 있어요. 그러니까 그거 어떤 부분에 있었느냐 하면 그 전에 많이 있었잖아요. 최근에도 뭐 소쩍새 마을이라든가 무슨 승려라든가 뭐라든가 또 종종 어디 보면 장애인 20명 갖다놓고 뭐 뭐 없는 거 잘 먹여준다. 그거 아주 잘못된 거다. 내 자신있게 여러분들한테 이야기해. 그것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줘라. 그래서 정부로부터 지도 받고 감독받고 정부로부터 보조금 받고 수시로 감사도 받고 그래야 문제가 안 터지는 거죠. 막 불쌍한 거 뭐 그 혼자 자기 뭐 없는 거 가지고 다 털어가지고 먹이고 뭐 한다. 매스컴에 그런 것만 따라 붙거든요. 정상적으로 자라난 것은 안 내죠. 내 달라고 해도 그래도 거기에 후원금이 모여 불쌍하다고 그럼 그거 먹고 날라. 그래서 사회복지사들이 나쁜 사람이 되. 에. 그러니까 사회복지사들도 정상적인 대우도 받고 또 일하는 건 철두철미하게 하고 그래야 이것이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나는 그래 지금껏 이야기는 사회복지 하는 사람들 조금 덜 받자 그랬는데 이제는 기회 있으면 야 사회복지도 전문적인 대우를 해줘라. 그래 이번에 인수위원회 들어가 가지고 싸웠어 물고 늘어진 것이 뭐냐 하면은 뭐 다른데 8만원 줬는데 여기 5만원을 줘라 아니다 8만원 주면 여기도 8만원 줘라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성사 시켰어. 그래 아마 이제 여기 어린이집 교사들 그 나 때문에 3만원 더 받는 거야.
우리 : 웃음
김종길
솔직한 이야기로 그 누가 누구 한 마디도 이제 나중에는 고맙다고 안 하겠지. 그래 그러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 그래 여러분 뭐 지금 뭐 그런 것이 과거에도 저 좀 있었지만 지역사회복지 계획 이렇게 보면은 참 우리 뭐 교수님들도 뭐 좀 그런 것 할 때 좀 잘 만들어줘야 되는데 남에 꺼 베끼는 스타일로 해가지고 보고서나 작성하는 스타일이라 그러면 잘못 된 거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아직 지금 한꺼번에 지역사회복지 계획을 용역을 다 줬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게 이런 근데 지역사회복지 그 계획을 지방자치제 단위별로 그 계획을 설립한다 그러면 그 지방자치단체의 특성에 맞는 계획을 설립해야 되는 거죠. 그래 남에 꺼 베껴다가 거기다 그냥 집어넣는 스타일 또 하고 있는 것까지도 이거 현재 잘 되고 있는 데도 뭐 새로 해야 된다는 식으로 그러한 그 정부 도움 형태라 그러면 잘못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그런 걸 다 겪어 나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사실은 나는 그래서 이렇게 찾아와 주니까 뭐 몇 번 제가 조금 거부하려고 그랬었는데 그래서 조금 그랬었죠. 그래 왜냐하면 이제 사회복지 오래하다 보니까 이제는 난 그래요 내 뭐 좀 안된 이야기지만 사회복지 사업은 더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거든.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거 이상으로 더 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어디 누가 오라 그래도 가지도 않고. 그리고 나는 나가서는 우리 마누라 하고 같이 지내야 되겠어 나는 이러거든. 여기 지난 세월동안 많이 일 했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는 뭐 기회 있으면 나를 위한 거 뭐 내 가족을 위한 것으로 가야 되겠다. 그래서 뭐 감투 쓰라는 것도 다 벗고 안 합니다.
그래 그런 스타일에 그러한 대답이 되었으면 될 것 같고 그 다음에 에 이 사회복지관 초대회장이 사회복지관 협회를 제가 만들었었어요. 처음에 만들었었는데 이제 아까 그 사회복지 사업법에 사회복지관을 집어넣었고, 두 번째로는 사회복지 운영 규정을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까 이 사회복지가 그 당시에 그 가장 큰 사회복지 그 시설로 클 수 있는 것들이 사회복지관 이였어요. 그래서 그 보고 이것도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사회복지관 협회를 조직해야 되겠다. 라고 중구남방으로 아까 이야기 한 사회복지계 우리나라 초기에는 그 사회복지 관장의 자격을 사회복지관 운영 규정에 관장의 자격을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사회복지 시설에서 몇 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사회복지관 관장을 할 수 있다. 라고 보고서를 바꿔 놨는데 정부가 이제 이게 이제 이렇게 민간자원에 의해 가지고 지어지고 민간자원에 의해서만 한다고 한다면 그 아무나 그렇게 손대려고 하지 않을 텐데 이제 그렇게 해 놓고 그게 어떤 형태가 되었냐 하면은 노태우 정부가 되고 그 뒤에 점점점점 바뀌다 보니까 사회복지관 보조금 체계도 달라졌고 보조금도 주고 시설도 해서 무상으로 위탁해 주고 그러니까 힘 있으면 어 저거 맡아서 내가 여생 보내면 좋겠네 하는 사람들이 생긴거죠.
그래서 뭐 고급공무원 하던 사람 뭐 힘 있는 사람들이 관장으로 이제 그걸 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보건복지부 장관한테 이야기해서 누구라고는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데 군발이 장관이 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 사람한테 이야기해서 그 자격제한 좀 바꿔라. 그래서 그 자격제한이 바뀝니다. 사회덕망이 있는 자로 그래 사회덕망이 있다는 것은 참 누가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거죠. 그러다 보니까 힘 있는 사람의 복지가 들어왔고 또 사회복지관은 그 사람이 오니까 뭐 뭐 또 보조금 체계도 달라지고 뭐 이게 그 사회 힘 있는 사람이 와서는 보조금을 많이 따 와야 되는데 따면 보조금을 뺏아 가는거야 그래서 북부복지관 보조금이 뭐 1억 6천인가 받다가 이제 딴 사람이 막 뺏아 가 가지고 나중에 1억 뭐 9천 몇 만원까지 떨어졌어요. 떨어졌다가 이제 다시 체계 잡아서 위로 올라가고 뭐 그런 수난도 겪었는데 그 때 이제 그 사회복지관 그 협회를 조직할 때는 그 보사부하고 우리 사이 그 관계가 좋았어요. 담당 국장하고 과장들하고 여러분은 아시는지 모르지만은 사회복지관 협회는 이런 협회. 협회라는 것은 사람 중심이죠. 맞아요? 틀려요?
우리: 맞아요.
김종길
그래 사람 중심의 법인은 무슨 법인이라 그래? 응?
사단법인이잖아요. 응? 여러분들 공부 좀 더 해야 하겠네. 법인 그러면 공법인이라는 것과 사법인이라는 게 있죠. 공법인이라는 건 지방자치 단체가 공법인입니다. 그래 법인이라는 게 멉니까? 법인이라는 게 뭐예요? 어?
법으로 인격을 부여 한 겁니다. 사람과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법으로 인격을 부여한 것. 그게 법인이야. 그러니까 법인은 재산을 가질 수가 있어 시설은 재산을 못 가져. 그러니까 사람은 재산을 가질 수 있죠. 그런 식으로 법인이라는 것은 법으로 인격을 부여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법인은 크게 나누면 이러는 것은 내가 가르쳐 주는 것 아닌데 (쩝) 공법인과 사법인이 있고, 그런데 이제 그 사법인 중에서 이제 이 우리 민간들이 만든 게 사법인이죠. 그 사법인 중에는 재단법인이라는 게 있고 사단법인이라는 크게 나누면 두 개가 이제 특수법인이 물론 있어요. 이제 특수법인도 나눠보면 재단법인이 되던 사단법인이 되던 하는 겁니다. 근데 그런데 이제 왜 이 이야기를 왜 했느냐 하면 사회복지 법인 그 사회복지관 협회입니다. 사단법인이 아니고 그래서 그 당시에 그 이제 이게 전례가 또 아까 또 전례가 하나 있었기 때문에 어거지로 만든 게 무엇이냐 하면은 사회복지협의회가 사회복지 법인으로 등록이 되었어요. 원칙적으로는 안 맞는 거거든요. 그래 뭐냐하면 시설장들이 모인 곳이 사회복지관협의회입니다. 여러분 여기 사회복지관연합회라던가 이제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보면 지금은 이제 한국사회복지협의회라고 되어 있지만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그것은 사단법인체예요. 원칙적으로 따지고 보면은요. 근데 그 이 사회복지관협회도 그 사회복지관 관장들이 모여서 만든 거니까 사단법인으로 해야 되지요. 근데 이 사단법인이라는 게 회비 중심체거든 그래 회비를 못 받으면 잘 안 되 그래서 이걸 키우기 위해서 재산을 좀 만들어야 되겠다. 복지관 하나를 정부가 지어준 것을 맡아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그 국장을 과사(01:01:53)를 만들어 가지고 사회복지 법인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세요? 여러분들 아세요? 사회복지관 협회가 사회복지 법인인지? 아직은 모르죠. 한국사회복지관 협회는 사회복지법인입니다. 그래서 초대회장을 했는데 그 중간에 이제 여러 가지 갈등이 있어가지고 하다 보니까 그 소귀에 그 내가 목적한 방향으로 회원들은 끌려오지는 않고 그래가지고 3년이 임기인데 2년하고서 사표내고 말았지요. 그 다음 사람이 하게 아마 첫 처음 주춧돌을 제가 놓은 거구. 그래 지금도 내가 보면은 지금도 보면은 사회복지관 협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종종 좀 저거하고 오히려 내가 만든 사회복지관 협회지만은 내가 볼 때는 네가티브합니다. 내가 볼 때는. 사회복지관협회라는 것은 그 정부의 이 협회가 회원에 어떤 침목 중심이 아닙니다. 물론 목적에다 거기다 만들 때 세부적인 어떤 정관을 만들 때는 친목을 도모하고, 세미나를 하고, 자질을 향상시키고 이런 것을 넣지만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미처 하지 못하는 부분을 여기서 해 가지고 정부가 제도화 하도록 해 준다. 그래 제도화 한다는 것은 보조금이 따라오도록 되는 거거든. 근데 자기네 개인의 신상만 발전하려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하고 자기 발전만 하고 그 예를 들면은 무슨 이야기 하나 할껄요. 죽어라 일을 했는데 상 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받는다면 그건 안 되는 거지. 그래 전통을 그렇게 만들어 가면 안 되. 내가 초대회장하고 내가 만들고 사회복지관협회 나한테 훈장 준다 그랬어 나 안 받는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만들어 가야 되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한 예가 그거 맞아요 틀려요. 내가 내 상 받자고 뛰어다니는 건 안 되는 거야. 열심히 일했는데 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한 결과를 가지고 상을 주는 거지요. 지금은 현역 회장들이 상 받아가 다. 그건 잘못된 거야. 내가 볼 때는 그렇게 보는거야.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이라는 것은 열심히 일해 가지고 그 사람에 어느 시점에 가서 은퇴를 한다 그랬을 때 아 그 사람은 참 공헌을 했다 그것을 평가해 주는 겁니다.
내가 작년 뭐 서울시 복지상을 받았지만은 그 전부터 상 준다고 해도 안 받았어. 그럼 나는 싫다. 상 받기 위해서 일 하지는 않았다. 나는 할 일이 더 남았다. 이제 떠날 때 되면 누가 줘야 되는거야. 그래 작년에 서울시 복지대상 받았어요. 그러니까 그게 중요한 거죠.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게 열심히 일한 결과가 후배들한테 평가를 받아야지 그 다음 사람들한테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나 상주시오 그러면서 나 상 받아서 나갈 스타일이라면 그건 어떤 면에서 잘못 된거야.
그래서 사회복지관협회는 제가 만들고 주춧돌을 놓았는데 지금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그렇게 보고 있어요. 그래서 좀 변화가 이루어져야 되겠고 그것이 이제 그 회비만 챙기려고 하고 일은 안하고 있고 그것이 자기의 발전을 위한 징검다리라고 생각을 하면 안 되고 사회복지관협회장은 전 회원들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모아가지고 정부로부터 제도화 하도록 만들어줘야 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뭐냐면 여기에 어려운 것들 전문적으로 커 나아갈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 협회가 방패역할을 해 줘야 된다. 협회가 방패 역할. 개인적인 방패역할은 못해 줍니다. 협회라는 이름을 걸고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글쎄 요즘에 모르겠습니다. 제가 옆으로 떠나오고 옆에서 보니까 조금 그런 부분은 잘못되어있지 않은가.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야기 다 되었나요? 음. 없는 것 같은데? 어 혹시 뭐 질문할 것 있나요?
질문 할 것 있으면. 말해봐요.
양원석 : 질문
수영 : 복지관이 3개가 여기 안에 들어와 있더라구요. 이 봉사회 안에 들어와 있더라구요. 북부종합복지관, 동작종합사회복지관, 중계종합사회복지관이 있는데 지금 그것들끼리 네트워크 되나요? 복지관 끼리?
김종길
우리 법인이 운영하는 복지관이 이제 인제 법인에서 직영하는 거죠. 우리 재산이고. 북부복지관은 이건 위탁시설이 아니예요. 우리 재산이예요. 이게 그러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 보세요. 정부보조금 이게 아마 지금 평가액으로 따져 보면은 물론 보조금을 받아서 주고 했지만은 재산 자체로는 사회복지후원회 한국봉사회 재산이죠. 요거는. 요거는. 사회복지 법인 한국봉사회
양원석 : 음.. 이 땅은요?
김종길
그래. 요 건물 이 땅하고. 땅이 한 천여 평 되고, 이게 천 몇 평인데 건물이 이번에 건물이 증축해 가지고 천 몇 평일꺼예요. 이게 여러분들 요 뒤에 보면 자료 뒤에 보면 나와 있을꺼예요. 자료 뒤에. 아참. 여긴 없구나. 그 아 재산으로 평가액이 한 75억 정도 되요. 75억 정도인데. 75억 가지고 은행에 넣어두면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가 한 3억 정도 지금 이자로는 더 나오죠. 지금 이자로는 나오겠죠. 근데 정부보조금 받으려고 일하는 곳은 아니잖아요. 근데 직접적으로 우리는 위탁시설이 아니고 그런데 당장 이렇게 정부가 민간재원을 둬가지고 민간재원에 투여되어 가지고 일을 한다면은 정부가 어떤 인센티브를 줘야 되지 않느냐하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돈 한 푼도 안 들여 가지고 위탁하는 거 그냥 맡아 가지고 하는 곳하고, 자기돈 들여 가지고 한다면 나는 그럼 이거 쓸모없고 다른 곳 하나 맡아서 하는게 낫지 않아요. 그치요? 그러면은 법인에서 돈 얼마 집어넣었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거고, 그런데 그걸 아직 정부가 이걸 인지하지 못해. 아까 뭐 민간자원을 이야기가 나왔는데 민간자원을 넣으려면은 그 인제 이 사회복지관에 근본적인 것이 그것부터 보아야 하는데 사회복지 여러분은 관립관립이라는게 있습니다. 또 관립민영. 지금은 관립민영이죠. 관에서 설립해서 민관에 위탁시키는 것이고, 관립관영은 관에서 지어서 관에서 운영하는 것. 응? 그 다음에 관립민영이 있는것이고, 그 다음에 민립관영이 있어요. 민간이 지어서 정부에 기부채납해서 정부가 관리하는 것, 그리고 민립민영이 있어요. 이건 민립민영이예요. 민간이 세워서 민간이 운영하는 것
이죠. 그러면 민립이라는 것은 민간이 재원을 투자한 것이죠. 그러면 거기에 인센티브를 줘요. 정부 돈 예를 들면 아까 75억 이라는게 여기 들어가 있는데 그러면 정부이 돈 75억 절약이 되었다고 보아야 되는거죠. 예?
우리들 : 네
김종길
근데 이제 우리는 이것이 해서 모델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변화를 줄 수가 없는 거고, 그리고 북부복지관이 좀 변화를 주려고 했더니, 저기 메카적인 역할을 했으면서 그것 안 된다. 또 지방자체단체에서 그러더라구. 응. 하나의 메카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걸 누가 와서 보더라도 항상 와 볼 수 있는 곳이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렇게 했는데, 그러고 이제 그 당시에 두 개 복지관을 같이 운영을 같이 했었어요. 그게 이제 중계복지관, 원래는 영등포에 했는데 인제 그게 민간에 땅에다가 건물에다 지었더니 그 땅임자가 처음에는 우리가 영구히 쓰도록 하라 그랬는데 주인이 바뀌니까 땅 임자가 땅 내 놓으라하면서 뺏겼지. 그래서 이쪽에 중계복지관을 위탁을 받아서 하고, 또 동작복지관이 중앙복지관이 없어지면서 동작복지관이 이사를 하면서 뭐 내가 복지관협회 회장도 했고 또 사회적인 역할을 할 때, 복지관을 더 맡아서 하라 수 없이 그랬는데 더 맡지는 않았어요. 그래 3개가 이제 그대로 왔는데 아마 우리나라 사회복지관 역사 속에는 그 세 개가 가장 오래된 복지관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어. 근데 이제 흐르면 흐를수록 중계복지관은 사실은 그것을 그대로 이어 받아야 하는데 그 당시 그쪽 복지관을 그냥 내 놓고 이쪽으로 오면서 여기 역사로 된 걸로 나타났는데 그것도 60년대부터 시작한 복지관입니다. 따지고 보면은. 그러니까 장소를 이전한 거지. 그래서 그것은 이제 한 법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업무가 서로 교류가 되도록 했고, 또 아직 내가 이사장을 하고 복지관을 떠났지만 전체를 총괄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여기서 회의를 합니다. 해서 이제 한 달 동안 프로그램에 변화를 어떻게 생겼고, 어떤 특수한 일이 있었고, 또 법인에서 지시 할 것이 있으면 지시를 하고, 또 인제 그 분기별로는. 또 주간은 매번 제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주간은 그 이 팩스로 이메일로 다 업무보고가 들어와요 삼 개 복지관이. 에. 주간 업무보고가 나한테 들어오고, 그것보고 확인을 짧게 해주고 합니다. 근데 이제는 사실은 머 법인이라 하는 것은 각 복지관들이 잘 하도록 뒷받침해주는 곳이지 복지관에서 법인에서 뭘 앞에서 무엇을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은 아니거든요. 잘못된 것들이 있으면 지적해 주고, 또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제시해 주고 하는 것이 법인의 역할이고, 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법인에서 뒷받침해 줄 수 있으면 뒷받침해 주는 것이 법인의 역할이기 때문에 아마 우리 시설을 돌아다녀 보면 법인 때문에 일을 못한다 소리는 안 할꺼예요. 법인이 좋아. 그리고 이제 나는 또 그래요. 나는 법인에 있는 능력이 수입에 능력이 기본예산이 있어서 돈이 좀 들어오는데 그것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렇게 사회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이 법인의 재단이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은 없거든요. 재테크 재산을 축적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결국에 가서는 그 위탁시설은 그만둬야 되지 않나 하는게 제 기본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냥 북부복지관 직영시설 하나만 제대로 끌어가고 시범적인 역할을 계속하고, 그 다음에 이 수입이 제한된 수익을 이제 여러 복지관에 쪼개주는 것보다는 위탁 받아 쪼개주는 것보다는 반납해야 되겠다. 그래서 요번에도 어린이집 하나를 반납한다고 공문을 했어요. 남들은 맡으려고 무척 하는데 내가 아직도 저쪽에서 아무 말이 없어서 다시 재촉 재독촉하는 공문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게 이제 우리 제 기본 방향입니다.
그래 종국에 가서는 지금은 왜 그것을 못하냐 하면은 물론 이제 점점 이제 제도화가 되어 있어 가지고 직원을 인솔을 해 준다는 방향이 되어 있어요. 이제는요. 사실 내가 뽑은 직원 또 내가 키운 직원들이 잘 있어야 하는데 그 다른 복지관이 인수하면은 내가 데리고 있는 만큼 보장은 못 받죠. 또 관장들은 또 거기서 받지도 않아요. 지난번에도 그 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죠. 동작복지관 거기 분리되어 있죠.
동작복지관이 뭐 심지어 아무튼 웃기는 이야기가 이사장이 자주 와서 인사 안 했기 때문에 재계약을 안 한다 그래서 전 직원이 인사해라 나는 손 떼겠다. 나는 당신한테 애걸복걸 안 하겠다. 그랬더니 다시 맡으라 해서 맡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이 웃기는 거죠. 열심히 일 해줬으면 거기에서 자기네들이 고마워해줘야지. 이게 무슨. 뭐. 그래서 거기 어린이집 이번에 내 놓는 겁니다. 응? 다른 어린이집.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나 정말 답답한게 봐요. 그 구에서 가장 쭉 지난 3년 동안 1등을 했고 무슨 평가 때마다 자기네들이 쭉 뭘 할 때마다 가장 우수한 시설로 지정을 했으면은 재계약이 왜 문제가 되야 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 보세요. 내가 거기서 그래서 싸운게 뭔 줄 아세요. 좋다. 당신이 인수해라. 그 대신 명분 있게 철수하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한국봉사회 명분 있게 철수하도록 상을 줘라. 상 주든지 무엇을 하든지 해라 그러면은 내가 손을 떼겠다. 재계약 안하는 걸로 그 대신 당신네들 선거 때가 왔었으니까 만약에 그것을 안 한다면 결국은 나한테 계약을 안 해 준다면 나 클라이언트한테 이 편지로 보내겠다. 당신들이 그 동안에 말했던 것 다 그대로 해서 보내겠다. 그랬어요. 그래서 성사시켰어요. 그랬더니 재계약 시켜 줍디다.
그래서 난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사회사업을 오랫동안 해 왔는데 회의를 느끼게 된다구. 열심히 일했으면 되었지. 열심히 일했으면 됬지. 열심히 일해서 그래서 말썽 없이 잘 했으면 자기네가 원하는 기본방향 대로 했고 그리고 자기네들이 잘 했다고 칭찬도 해 줬고, 상도 줬고 그렇다면 재계약이 문제가 될 필요가 없잖아요. 근데 이사장이 자주 와서 인사 안 했다고? 이사장은 거기 나타나는 거 아닙니다. 의결기관입니다. 맞아요. 틀려요?
우리 : 맞아요.
김종길.
이사회는 타나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밖으로는. 의결기관이야.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사업계획 내고 하면 그것 검토해서 이사회에서 의결해 주고 그렇죠? 도장찍어주고, 권면적인 책임 지어주고 재산이 있으니까 우리직원들이 어디 가서 잘못했으면 내가 변상할 책임이 있는거니까 변상해 주고 이런 거 하는 겁니다. 이사장이 어디 로비하러 왜 다녀야 됩니까? 시설장이라는데? 그런 종종 그런게 나와요. 그럼 열 받죠. 그러니까 나는 직원 때문에 우리 직원 때문에 야 니들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냐 내가 니들 하라는 대로 고개 숙이라면 가서 고개 숙인다. 그러다 나중에는 열이 나가지고 공문 보내. 내가 그랬어요. 최후에는 공문 보내라고 했어요. 공문 보내. 이렇게 공문. 그래서 그 공문이 간 겁니다. 가고 뭐 그런 이야기 들어서 정식으로 내가 가 가지고 요고 당신네들 뭐 취임한다하면 꽃도 보내고 뭣도 했고. 내가 이거 왜 해야 되느냐 했거든요. 왜 해야 되요? 거기 주민을 위해서 내가 여기 저 임대료 받아다가 거기 돈 주고 말이야. 거기 주민을 위해서 외부에 후원금 받아다가 연간 후원자를 찾아서 1억 이상 뿌리고 있는데 1년 12달 해봐야 고맙다는 편지 하나 없는데. 생각해 보세요. 그게요. 지방자치단체에 따라서도 다 달라요. 하는 곳은. 그러니까 비교 개념을 갖게 되는거야. 이런 이야기는 안 해야 되는건데. 쩝. 그게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많이 옛날에 비하면 많이는 변화는 왔는데도 아직도 그런 부분이 있다. 음. 그래서 뭐 지난번에 어디지 인제 나보고 인수위원회 들어와라. 아 나 이제 자꾸 그런 거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빼달라고 그러니까 청장이 왔어요. 그러니까 인수위원회 들어가니까 공무원 태도가 달라지는 거 있죠. 그러니까 내가 아이구 우리 시설 여기다 하기 위해서는 그런 역할을 가끔 해야 되겠다. 그렇지 않아요? 그게 여러분들 그렇고. 말속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에 사회복지 발전을 위해서는 나를 죽여야 될 때가 많아요. 그게 여러분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는 겁니다. 정말 성격으로 봐서는 다 때려 엎고 다 관두고 싶은데 이것을 하자니 고개를 숙여야 되고 받아야 되고 그게 현실일 때가 많다. 그래서 사실 아까 이야기 한 것 마냥. 이제는 그런 (1:18:20)로 받고 싶지 않다. 내가 여태까지 평생을 해 왔으니까 이제는 나를 위한 생활을 갖고 싶다는게 바로 그겁니다. 거기 지금 자꾸 몰입하고 거기에 뛰어 들어가고 싶고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은요. 그래서 내가 아 이건 나하고는 안 맞는다. 엇그저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해서 책을 이렇게 뭐 300페이지짜리 되는 것 사가지고 집중적으로 2권 읽었어요. 갑자기 자고 나서 보니까 한쪽 눈이 굉장히 빨게요. 뭐 막 그래서 나는 눈병이 걸린 줄 알고 안과를 찾아 갔더니 과로로 오는 충혈이래요. 나이가 들어가지고. 그러면서 이렇든 저렇든 뭐 약을 넣어도 잘 낫지 않는데 한 일주일 지났더니 집어넣었더니 깨끗이 가셔요. 나머지 한권을 읽어야 되겠다 해서 집에서 토요일 일요일날 읽었더니 또 터져 버리더라구요. 그래서 책도 여러분 연령 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아 이제 나는 책을 보고 뭐하고 이럴 시기가 아니로구나. 내 체력은 그렇게 이제 느껴요. 왜 그러하냐면 이제 열심히 이제 건강관리를 위해서 최근에 와서는 뭐 내가 이제 당뇨가 있으니까 매일 뛰거든요. 그러니까 그 뛰고 책보고 뭐 하니까 내 체력이 아닌가보다 하는 이야기야. 네.
양원석
음. 저 저 질문이 있습니다. 어 사회복지관 맨 처음 만드실 때에 그 핵심 관점으로 지역복지. 곧 지역복지의 욕구를 기반으로 해서 거기에 필요로 하는 내용이라면 고정화 되어 있지 않고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면 사회주의 개념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통해서 복지를 구현하는 거라고 아까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 사회복지관들을 보실 때 지역복지라는 관점. 그리고 욕구 중심으로 복지를 확대시키는 그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좀 듣고 싶습니다.
김종길
사회복지관은 시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하지 않으면 죽죠. 당장 죽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은 아까 뭐 기능인을 양상하기 위해서 학력을 보강해 주기 위해서 또 뭐 이런 빈곤에 초점을 맞춰가지고 갔는데 지금 많은 우리 여기 기관은 그 사회복지관에 지금 파트가 보면 사회복지. 복지파트가 있고 재가 파트. 여러분들 다 크게 이제 정부에 의해 재가복지관이라 나누어져 있어요. 그게 사실은 그것도 그 당시에 여러분들 짧은 시간에 다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은 그 재가 예산을 땄는데도 그 당시 제가 좀 공헌을 했습니다. 별도로. 정치 문민정부의 정치가 먹을 때 그걸 틈을 타야 되요. 그래서 그 당시 국장에게 아이디어를 줘가지고 이러이러한 것은 많은 표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한 것이 복지관 예산을 따려고 한 건데 이게 부분이 재가로 해서 따로 나온거야. 아직도 그것이 통합이 안 되. 복지관 속에 아직도. 재가는 재가대로 별도 예산 관리해야 되고, 복지관은 복지관대로 별도 관리해야 되요. 근데 이걸 합쳐야 되요. 하나에. 돈에 꼬리표 붙어 있는게 아니거든. 그래서 예를 들면 재가는 그렇게 땄는데 그중에 재가 예산은 올리지를 않으니까 거기 재가에는 과장 하나, 복지사 하나, 운전사 하나 두도록 되는데 이런데 그 호봉이 높아지니까 예산을 못 짜. 그래 가지고 작년 재작년에는 복지관에서 운영비가 올라가니까 어떻게 하면 재가 과장을 없애버리고 여기서는 재가 과장인데 기록상으로는 복지관에 들어가 있어. 돈이 이 돈을 못하니까. 근데 이제 그런 식으로 그 시대에 따른 변화를 줘야 만이 살아남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큰 것은 아직도 앞으로 그런 부분으로 끝없이 노력을 해야 되지만 민간자원을 활용하고, 민간의 어떤 그 재원을 활용해야 할 부분은 끝없이 가야 되지만은 복지대상자가 자체적으로 80% 정도는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들 사회 서비스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그렇지요? 그러니까는 지금 그 자기 재원. 자기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의 시범 프로그램으로 잡고 새로운 사례를 만들기 위한 노력해야 되고, 그 다음에 이제 많은 예산을 투여할 수 있는 것들은 정부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맞춰줘야 됩니다. 근데 정부가 원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정부가 이게 이것이 필요하니까 이거 이거 해가 아니라 그걸 해 이렇게 하는 것이 없거든. 정부에서도 아이디어가 없으니까. 그러니까는 큰 틀을 맞잖아요. 자 영세민을 지금은 이제 저소득주민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러한 자활계층들을 도와야 되겠다하는 것은 정부도 맡고 우리도 맡는 겁니다. 그러니 이들을 위해서 도와줄 프로그램에 전문적이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을 때 자원도 받을 수 있고, 정부로부터 예산도 받을 수 있고, 민간자원도 동원할 수 있고 하는 겁니다. 그게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그러니까 사회복지관 프로그램은 그런 방향으로 자꾸 바뀌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A라는 복지관이 해가지고 잘 된다 해가지고 B복지관 가서 되는게 아니거든. 그런데 자꾸 정부에서는 획일화 하려고 해요. 앞서가려 그러면 너 거기가면 안 되 이렇게 누르고 있고, 이런 프로그램 왜 해. 이걸 민간 기관에 맡긴 특성을 그대로 살려줘야 되거든요. 민간기관은 법에 의해서 어떤 프로그램 하는게 아니라 시생착오를 겪더라도 시범적으로 해 볼 수 있는 것이 민간의 특색이거든요. 신속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 정부가 이렇게 책임질 부분은 아니구요. 단위 사회복지관이 책임질 정도 밖에 안 되니까 하도록 자꾸 이렇게 북독아 줘야 합니다.
그리고 행정가들을 누누이 설득해 줘야 하는 게 뭐냐하면은 당신네들의 기본적인 역할은 조장적인 행정을 해 줘야 되는 거지. 와서 감사하고 규제하는 것들 딱 봐가지고 자기네들이 봐서 딱 봐 가지고 이 규정하고 여기 한 것 보니까 아 이쪽으로 해석해 줄 수도 있고, 이쪽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 많거든요. 그러면 이쪽으로 해석해 줘야 되. 이쪽에서 이러한 걸로 했으면 일반인들은 그렇게 안 해줘. 지들이 다칠까봐 요렇게 봐가지고 이쪽으로 해석해 줄 것도 이쪽으로 해석을 해 규제로 간단 말이야. 그러니까는 너무 힘들지.
한 예를 내가 들어줄깨. 여기 우리 자활후견기관 있는데 자활후견기관에 열심히들 일하라고 해 가지고 자체에서도 돈도 많이 들어가고 하는데 요번에 보건복지부가 평가를 해 가지고 여기서 1등급을 받았는데 2등급으로 떨어졌어. 왜 떨어졌느냐 직원들 불러놓고 따지니까는 딱 점수표를 가져 온거야. 그게 뭐냐하면 구청에 가서 공무원한테 가서 수 없이 이거 해 달라고 해도 안 해줬어. 그게 뭐냐하면 조건부 수급자를 이쪽에 몇 명을 줘야지 우리가 됩니다. 나머지 부분은 다른 평가 부분은 점수가 적어요. 그래서 거기서 사람 1명만 더 왔어도 점수가 달라져 가지고 1등을 해. 그런데 7등 8등으로 떨어진거야. 그래서 내가 엇 그저께 과장을 보고 당신네들 우리가 1등하면 구청도 1등하고 좋지? 그 구청에서 당신네들 상 받아 먹었지 내가 그랬거든. 요즘에 내가 청장 인수위원 들어가니 뭐 과장도 들와서 일하고 그러거든요. 생각해봐라. 담당공무원 하나가 사람 하나 덜 줌으로 인해가지고 여기 우리 직원들은 실의에 빠져. 그리고 예산도 깍였고, 나머지 부족 부분예산 당신들이 메꿔 내. 세상에 그래요. 그러니까는 열심히 자기네가 일해 놓고, 그 심지어는 그 여기 자활관장이 담당 계장하고 팀장하고 막 싸웠데요. 왜 안주느냐. 이렇게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다른 점수는 평가에서 가장 우수하게 나왔는데 거기에서 점수가 깍이니까. 사람 머리 숫자가 적어가지고 이건 딴 것도 없어. 머리 숫자가 적어가지고. 적어도 몇 명 이상은 몇 점, 몇 명에서 몇 명이상은 몇 점 이렇게 했거든요. 머리 숫자 적어서 점수가 깍였다 그러면 그 얼마나 억울해요. 일한 사람들. 여러분들 그렇게 되면 이 참 회의를 느낄 것 아니야. 그리고 그걸 몰랐다면 모르고 그것이 틀림없이 장애인 되니까 가서 사람 달라고 수없이 이야기 했는데도 과장한테 엊그제 왔길래 이야기 하니까 나 그거 몰랐는데요. 팀장이 보고하지 않아서 몰랐데요. 그래. 그래서 시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해야 됩니다. 그리고 변화를 줘야 합니다. 변화를 주지 않으면 복지관은 죽어요. 그리고 뚜렷한 정체성을 찾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에 몇 번의 그 지금 사회복지관 자리를 잡아가면서 몇 번의 그 문제가 좀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으면 복지관 죽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보는 관점은 지금 사회복지관에 대부분 사회복지 우리 사람을 모집을 해 가지고 뽑으려고 하면은 자활후견기관은 안 가려고 그래. 그리고 사회복지관으로 오려하고. 근데 자활후견기관이 앞으로 커나갈 수가 있는 곳입니다. 정체성이 뚜렷해 거기는. 조건부 수급자 그래서 자립자활 할 수 있도록 하는. 그 다음에 사회복지사업법은 지금 저 두 명에 의해 가지고 움직였는데 지금 그 남아도 제대로 되어 있지가 않아. 사회복지 사업법에 들어가 있지가 않아. 사회복지관. 사회복지관이라고 들어가 있지만은 오히려 그 지침 그런 건 제대로 되어 있지가 않아. 그런데 여기는 국기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해가지고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긴 좀 제대로 그 협회가 역할을 하고 프로그램을 제대로 제시하고 저 뭐 성과를 여기서 만들어 낸다면 정부 돈을 많이 줄 수 있는 곳 이예요. 사회복지사들이 또 뜻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곳 이예요. 생각해 보세요. 못사는 사람들 근로의식이 없는데 그들을 설득해 가지고 일을 하고, 자활하도록 해 주고, 스스로 살아가도록 도와줘서 살아서 자기 점포 갖고 살아간다면 복지사업의 참말 여러분들 무엇을 기대하고 합니까? 내가 도와준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혼자 힘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그겁니다. 여기 뭐 좀 사회교육을 좀 해 가지고 졸업하고 들어오고 그 사람들 나 돈 낼 것 다 냈어. 나 배우고 나가. 그보다는 사회복지 서비스 프로그램에 참여해 가지고 정말 어려운 사람이 내가 도와주고 이렇게 이 사람이 변했고 이렇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또 그게 10년 흘러 하다못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우리 지금 그런 사람들 많아요. 우리가 돕던 사람들이 우리 봉사자가 되었고, 지금 후원자가 되었고. 아까 예를 들었죠. 한 때 뭐 공무원 취업반까지도 했다고 그 공무원 된 사람이 후원도 되고. 그게 자꾸 이렇게 흘러가면서 역사가 쌓여 가는 겁니다. 그냥 떠나면 그렇고. 그래서 이제 가장 희망하는 것은 그런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데 우리 직원들한테 이건 영원한 건데 언제까지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요즘에는 목소리 들이 많고 우리가 이제 지역복지라고 하지만은 지역이라는 복지라는 것은 우리 마을 위 필링이라는 것이 우리 동네가 있어야 되는데 지금 그게 아니고 모두가 돈 벌고 강남 학군으로 강남으로 가야 되는 형태가 되다보니까 여기에 아무리 좋은 것을 해 놔도 소용이 없죠. 요새 하다못해 밖에 2층 주간대(01:30:01)는 그렇다 쳐 놓고 요새 엘레베이터 놓으면서 가끔 가다 쇠 자르는 소리 조금 나가거든요. 조금만 나가면 당장 민원이 들어가거든요. 이런 상태의 세상이거든요. 그러니까는 우리 마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일깨울 것인가 그래서 우리 직원들한테 뭐 많이 우리직원들 어저깨도 뭐 이제 통 반장들, 관리소장들 다 불러놓고 교육했다 그러던데 그런 부분들을 우리 복지관이 행정기관으로부터 아니면 다른 뭐 감독기관으로부터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고 우리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주민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너희들이 역할이였다. 그것이 너희들이 한 일이였다. 그걸 내가 지금 이야기 해 주는 겁니다. 그렇게 뿌리를 박고 일해라. 만약에 또 심지어는 사회복지사 너를 내가 부당하게 해고 했을 때 지역주민들이 아니다 이 사람은 우리 주민을 위해서 이렇게 이렇게 일 한 사람이다. 하고 들고 일어날 사람이 있어야 된다. 그렇게 일해라. 제가 바라게 그겁니다. 근데 그게 가능하겠느냐 하는 것은 나도 케스천를 가지고 있는데 실제는 그게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볼 때는 그래서 모르겠어요. 종종 가끔가다가도 뭐 전화로 하는 사람도 있고 내 방 찾아와서 정말 고맙습니다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있는거고, 어느 직원이 뭐 했다. 심지어는 참 그 여러분들 이런 것 있잖아요. 아무래도 저소득 주민이고, 교육도 적고, 위생관념도 부족하니까. 나 지금 밥먹으러 내려가려고 손 싹 씻고 내려가는데 저쪽에서 악수하자고 달려들고 이런 경우도 많이 있어요. 그렇다고 악수 안 할 수 없잖아. 두 번째 뭐 나 그동안 어디 좀 잠깐 시골에 가서 좀 농사를 짓다 왔는데 이 만큼 검은콩 갖다가 이거 저 유기농이니까 화학비료 하나도 안 쓴 거니까 저 회장님 좀 갔다 잡수시오. 그러는데 사실은 받아가지고 가지고 올라왔는데 식구가 많지 않으니까 필요치도 않고 여기 쓰라고 주고 가고 그러지만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아까 그랬잖아요. 나갔는데 야쿠르트 하나 담아다가 먹으라고 주고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그 사회복지 분야에 가장 여태까지 해 오면서 보람을 느낀 것은 자기가 도왔던 사람들이 그 자기가 희망한 대로 잘 가 줬었을 때 다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참 아 과거에 보람이 있었다하는 거고, 두 번째로는 어 자식 자랑 좀 여러분들한테 한다면 아까 딸이 둘이 있다고 했는데 딸이 둘 다 의사가 됬어요. 걔들이 후원금을 넣어주고 있고, 아빠를 이해해 주는 것 그런 거. 기회 있으면 도와주려 하는 거. 이런 부분. 그런 것이 내가 이쪽 일을 했던 것이 얘들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전달되지 않았는가 그런. 그러면서도 가끔가다 회의를 느끼는 것은 아까 그런 거 문제와 부닥칠 때 평생을 해 왔는데 이럴 수 있나하는 사람이 양대간에 왔다 갔다 하는 거죠. 도움이 됬으면 좋겠네. 여러분들.
양원석
선생님 저 또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 정부에서 문제는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 민간에서 즉, 선배님께서 그런 부분에 대한 대안을 만들고 그로부터 실행함으로써 정부에서 그런 것들 제도화 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신 변화를 주도해 가셨는데요. 보통은 변화가 정부에서 제도화 되는 그 부분에 참여한 걸로만 보통은 많이 보았는데 변화를 주도해 오셨는데 어떠한 마음이 있으셨기에 가능했었는지.
김종길
하나의 문제라는 것은 자기가 아까 이야기 한 어느 부분에 전문적으로 이렇게 가야 되겠다는 것은 뚜렷한 목표 골을 세워 놓는 거죠. 그러니까 골을 세우는데 사회사업방법론으로 보면은 그것이 하나의 목표를 설정해서는 나름대로 그 여러분이 배운 전문지식으로 타켓을 설정하는 겁니다. 타켓을 설정하는 거. 자 한 예를 제가 들겠는데 북부복지관을 증축을 하고 리모델링을 해야 되겠다고는 한 10년 전부터 이게 이제 이 시기가 왔는데 그 때부터 계속 에드벌룬을 띄우는 겁니다.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 이러이러해서 필요하고 증축을 해야 되겠고 이렇게. 그러면은 그게 세뇌 동작이 되는 가봐요. 2년쯤 가고 3년쯤 가다보면 그 사람들도 거기에 동참을 해줘. 일은 안 이루어져도 아 이거 정말 필요한데. 예를 들면. 한 예가 그래서 지금껏 그 정부로부터 그러한 것은 나는 그런 식으로 접근했어요. 하나의 제도를 바꿀 때도 당장 머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필요에 따라서 힘에 의해서 힘의 작용 과거 힘에 작용에 의해서 당장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은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가 그 사회복지를 한 사람들은 그 자기가 이렇게 지나온 과정을 되돌아 봤을 때 저 놈 참 나쁜 놈이다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서는 안 되. 자기관리를. 그러니까 딱 지나와 가지고 그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누구든 돌아간 뒤에 그 사람 어때? 김종길이 어때. 걔 괜찮아. 그러면 다음 사람도 접근이 되는 겁니다. 몰라도 자기 관리를 그런 측면으로 좀 하면 좋겠고. 두 번째로는 어떤 자기 하고 싶은게 있으면 오늘 당장 안 되더라도 자꾸 사람마다 내가 거기에 대한 것을 충분히 준비를 해 놓고서는 띄우는 겁니다. 그 띄우면 한 2년 3년쯤 되면 되더라고. 자꾸. 한 예가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고, 제도를 바꿀 수 있고. 그런 것들이 되요. 그래서 내가 보는 건 대게 이제 그 아까 협회가 제 길을 지금 못가고 있다하는 것이 협회. 지금 협회 정도의 힘이라면 전국에 400개가 있는데 그러면 자꾸 의견을 규합해 가지고 의견을 던져 주는 겁니다. 자꾸. 큰 마스터플랜 비슷한 걸 해 가지고. 던져줘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챙겨 가야 되. 근데 이제 그러면서도 또 경험적으로 터득한 게 뭐냐 하면은 내가 요구 상황이 세 가지가 있는데 세 가지를 한꺼번에 던질 것이냐 아니면 요 것 하나씩 던질 것이냐. 세 가지 한꺼번에 던지면 그 중에 하나밖에 안 되요. 근데 프라이언트 상 제일 나쁜 게 먼저 되거든. 우선순위가 가장 쉬운 걸 해주는 거니까. 예를 들면 그러니까 딱 상황 봐 가지고 어렵더라도 딴 건 숨겨 놓고 요고 하나만 던지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쯧 셋 중에 하나만 되면 된다 하면은 세 개 다 던질 수도 있고 그런 식으로 일을 해 왔어요. 근데 뭐 어떤 철칙이 있는 것은 아니고 원칙이 있는 거 아니고 근데 한 가지는 뭐냐 하면은 뚜렷하고 그 정확한 목표가 설정이 되었다면 그것은 수 없이 그 사람하고 관계가 없더라도 만나는 사람마다 수 없이 던져 놓는 겁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부러 의도적으로도 찾아가고 아니면 그냥 어떤 회의에서 만나도 그렇고 항상 그 문제를 집약적으로 해 나가다보니까 어느 날 그게 되더라구. 그래서 어느 날 또 그것을 도와줄 사람도 생기고. 예를 들면 이 사람이 지금은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힘이 없었는데 이 사람한테 쭉 던져 놓고 넘겨요. 김회장 그 때 이야기 하던 거 아직도 필요해? 아 필요합니다. 요번에 해. 이런 식으로 자기가 그 자리에 갔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한 가지 살아가는 방법 이였던 거 같아. 무 그것이 지금 이렇게 보면 꼭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닌데 자꾸 그런 스타일로 했거든요. 그래 대답이 됬어요?
백선희
저도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제가 저는 먼저 강남대학교 사회복지 전공하고 있는 백선희라고 하고요. 준비를 하다보니까 그 초대 회장님을 역임하셨잖아요. 한국사회복지관 협회에서 그 때 큰 사업 중에 하나가 전문성을 좀 높이기 위해서 직원들 보수교육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지금 그 때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보수교육은 어떤 능력이 필요했는지 하는 내용이랑 지금 현재는 어떤 보수교육이 필요할 것인가 생각하신 부분이 있으신지 궁금하거든요.
김종길
글쎄 뭐. 그 때 전문성 교육이라면 사회복지관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어떤 마이드를 가질 것이냐 하는 그것이고 복지마인드죠. 복지마인드가 엇그저깨 지금 우리 직원들한테 이야기를 좀 아까 들어올 때 제가 그것 검토하던 건데 예를 들면 그 아주 우리 후배들한테 내가 실망하는 게 있거든요. 여러분들까지도 다 마찬가지 모르겠는데. 초기 우리 시대에 사회복지라는 것은 밤새워 가며 일하고 밤새워 가며 하던 것들이 참 많아요. 근데 그 요즘에는 이제 그 직원들이 자꾸 근로기준법만을 따지거든요. 그래서 최근에 와서 웃는 이야기를 한다면 이사장인 그 내가 내방에다 그럼 좋다 내 방에다 커피세트를 갖다놔라 내가 타 먹겠다. 여직원도 뭐 그 신문에서 커피 타다 나르면 뭐뭐 하다. 그래서 이제 손님이 올 때만 타오도록 했고 그냥 내가 혼자 먹고 싶을 때 내가 타 먹는 거예요. 그래서 한 예가 뭐냐면 또 그게 이제 왜 그런 식까지 가게 됬냐면은 마인드 마인드라는 게 어떤 직장이라는 부분은 뭐 복지마인드라는 것도 하나의 직장의 이제 일반적인 건데 성의가 있고 그러면 자기가 내가 뽑을 때에는 당신 이러 이러한 일을 해야 됩니다 하는 식으로 뽑아요. 지금 분명히 이야기 해 주고 있다고. 커피도 끓여야 되고 무엇도 해야 되고 계약이야 일종에. 그런데도 통상적으로 아닌 걸로 지금 받아들여져 있어. 일단 들어오면 이게 뭐 이제 뭐 뭐 여직원이 많다 보니까는 또 자기도 자격지심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직원, 나이 적은 직원 뭐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항상 회장 커피를 타야되나 하는 생각이 있었겠죠. 그러나 보니까 이렇게 빙빙빙 돌다보니까는 내 눈에 당직자가 생겼더라구. 이사장 커피 타 주는 당직자가 그러니까 내가 참 느낄 때 기분이 별로 안 좋죠. 두 번째로는 사람이 자꾸 바뀌니까 이것도 하나의 기호식품인데 강도가 달라져. 어느 사람은 연하고 어떤 사람은 이렇고 어떤 사람은 미지근하고 어 그러니까 기호식품이라는 게 안 맞죠. 그래서 내가 화를 내고 이제 뭐 그러고 나서는 당직자가 정해졌는데 내가 아이 이거 풀어줘야겠다. 차라리. 그래서 여러분 내 방 여러분 실습 올 기회가 있으면 보면 내 방에서 이제 내가 직접 타 먹어요. 그게 이제 저건데 우선 그 처음에 그 복지관을 세워가지고 좀 교육을 시켰다는 것은 복지관이 예산을 따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가야 그것이 전문교육도 전문교육이지만은 그 복지관이 가야 하는 기본 역할들 그걸 많이 노력하려고 했었었어요. 그래서 아까 이야기한 그 시대에는 그 법제처에 가서 사회복지관이 뭐라고 설명해야 할 정도로 그래서 이것이 있는 것이 정말 절대적으로 제가 그 작용한 게 뭐냐하면 여러분들 주택관리촉진법을 보면 뭐 60 평광미터 이하의 아파트를 지을 때에는 강제적으로 복지관을 짓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택공사에 가서 뭐 그 이야기 하고 그럴 때 주택공사 그 과장, 계장, 뭐 담당자들 나한테 개새끼까지 하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욕을 먹은 사람이예요. 내가. 너희들은 돈 한 푼 안 내놓고 어? 저 이 임대아파트 단지에다 복지관을 다 짓도록 만들어 놨다고. 그거 아무도 모르죠. 그 주공에 가가지고 주공 사람들이 생각해 보세요. 복지관 하나 시킬려면은 2~3억씩 거기다가 투여를 해 놨는데 지금 그렇게 해 가지고 그게 늘어났는데 그러면은 거기 아까 이야기 한 복지관이 이제 그렇게 해서 수가 늘어나다 보니 이런 관장도 오고 저런 관장도 오고 그러니까 전문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심지어는 어떤 교회에 갔더니 당신 지금 관장 하려면 하다못해 사회복지 연수원이라도 갔다 와 가지고 해라. 아니면 사회복지개론이라도 읽어라. 그걸 요구했던 겁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데 이제 그 뒤에 지금은 지금도 그럼 전문 어떤 협회에서 주관하는 보수교육이 필요하냐 뭐 연중 한 번은 필요할런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교육이 너무 많아요. 참 잘 되요. 참 많아요. 주변에서 하는 그런 많은 교육을 참여해도 많이 갈 수는 있지 않느냐 너무 많기 때문에 그거 다 참여 시키다 보면 일을 못해. 그래서 쉴 때 해야 된다고. 그래서 우리 여기는 뭐가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면 직원이 돌아가면서 참여해라 그리고 예를 들면 그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회체제 속이 많이 발전을 했기 때문에 그 시절하고 달라진 게 뭐냐하면 이제 뭐 지원재단에서 사회복지사들 영국도 보내주고 뭣도 보내주고 그런 거 많잖아요. 자기 노력만 하면은 갈 수 있는 기회도 많고 그래서 그 뭐 엇 그저깨도 전부 관장들 중국 싹 한꺼번에 다녀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사회가 그 만큼 좋아지니까 근데 그것들은 뭐냐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어느 누구 특정인에 의해서 발전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씩 하나씩 돌을 놓아왔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왔다. 거기 나도 이제 공헌 한거구. 근데 뭐 어떤 사람이 조금 더 할 수도 있고 조금 적게 할 수도 있는데 모두가 우리 선배들서부터 모두가 잘 해 왔는데 간혹 가다가 저거한 사람도 있지만은 기본 방향은 모두가 그렇게 다 왔다. 여러분들도 이제 이걸 이어 받아서 또 가야 되고 그 다음에 또 이어받고 그래서 나는 여러분 세대만은 그래도 사회적 충분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게 제 소망이다. 그래서 그 이제 뭐 사회복지관 하는 사람도 뭐 남 휴가 갈 때 휴가갈 수 있어야 되고 이래야 되는데 그러면서도 머리에 복지 마인드는 있어야 되죠. 그게 엇 그저께 제가 화를 냈다는 거예요. 여기는 98년도에 1층이 완전히 물이 찼던 곳 이예요. 이 복지관이. 그래서 1층이 차가지고 그 해 한 달을 복구 작업을 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우리 직원들한테 제가 비만 오면 비상을 거는데 호우경보가 그렇게 내렸는데도 이번 주말에 사람들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매뉴얼을 만들어라. 그래서 직원들이 어떻게 하는 것까지 하라고. 물론 대비를 했기 때문에 괜찮아요. 그 동안에 그래도 지대가 낮은 곳입니다. 그러면 이건 복지 마인드가 아니라 자기 직장. 아니 모든 공무원이 비상 걸어서 다 나와서 일하고 있는데 자기 직장이 위태한 지역에 있다면 당연히 나타나서 하나라도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필요할 때는 여성 차별하지 말아라하면서 일할 때는 여성들 다 따집니다. 그래서 내가 지난 번 직원회의 들어가서 야 남자 혼자 모래주머니 하나 들것 여자는 둘이 들면 더 가벼워 왜 안 나타나는 거야? 자기주장만 자기 필요한 것만 주장하는 형태가 되면 안 되죠. 그래서 아까 근로기준법, 커피 이야기 한 겁니다.
여성직원들 자기 권리를 주장하려거든 의무도 해야 되. 그래 근로기준법? 야 이 시국에 너희들 동원했다고 내가 근로기준법에 걸릴 것 같으냐? 안 걸려. 생각하세요? 내가 너희들 자발적인 참여 안 하면 강제근무 시켜 내가 그랬다고. 그렇지 않아요?
스스로 가장 자기네들이 참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거야. 여러분들 여러분들한테도 교육적으로 이야기 하는거야. 그게 예를 들면 아까 그래서 팀을 나눠라 팀을 나눠가지고 어떤 때는 뭐 A팀이 나오고 어떤 때는 B팀이 나오고 어떤 때는 전 직원이 나오고 그 정도까지 양보해 줬으면 됬지. 그것이 안 이루어진다면 강제근무 시키겠다. 비상근무 싫으면 나가라는 거야. 아니 그 직장이라는 것이 누가 지켜주는 거야. 자기가 지켜야 되는 겁니다. 내가 항상 이야기 하는 겁니다. 야 하룻밤 와서 고생하고 사전 대비하면 괜찮을 것이 그거 팽개쳐 놓고 있다가 물 들어온다면 남들한테 손 벌려야 되고, (01:47:50) 물 쭈글텅이에서 일해야 되 냄새나는 데에서 어떤 게 좋냐 하는거야? 그런 게 잘 이해 안 되는 가봐. 그게 이제 노파심이예요. 그게 자꾸 고민이예요. 예 됬어요? 예.
근데 분명히 이야기 하지만 뭐 1세대라고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요. 나도 중간에 다리를 하나 놨다 이렇게 생각하고 무엇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여러분들한테도 내가 이야기 한다면 난 뭐 이렇게 사회복지관을 했는데 여러분 더 좋은 것 만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아이디어를 짜고 또 왜냐하면 그 동안에 이렇게는 사회복지관에 필요했는데 다음 갈 길은 사회복지관에 다른 것들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전문지식을 가지고 거기에 투여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고 만들면 그것이 정부로부터 인정받으면 확대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럼 사회복지 공부한 사람들이 가서 일할 수 있는 거고.
사회복지교수들이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걸로 끝내가지고는 안 되지요. 그것을 가르쳐 준 사람들이 배운 사람들이 그 분야에 가서 자기가 가르친 것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일할 수 있는 조건까지 만들어 주는 것이 교수의 역할이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교수들은 가르치는 것을 끝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그래서 솔직히 이야기해서 사회복지를 확대해 가는 과정 속에서 상당한 교수들이 상당히 방해를 놨었어요. 상당한 교수들이 방해를 놔서 엄청나게 고민도 했었고 오늘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회복지관을 확대하고 이렇게 자리 잡혀 가니까 복지사무소로 바꾸겠다. 이렇게 해 가지고 그래서 뭐 삼지사방 뛰어다니면서 시범복지사무소에 관한 것을 제가 용역비를 대가지고 사회복지관의 가야할 길을 같이 제시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뭐 그 참 은사는 영원한 은사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뭐냐하면 제가 중앙대학교 나왔다고 했죠. 김영모 교수 상당히 고집이 강한 분인데 그 양반도 복지 사무소도 필요하다고 누누히 강조하던 사람이 제가 찾아가서 선생님 복지 사무소보다 이쪽 방향으로 좀 결과를 유도해 주시면 했더니 그걸 해 주더라구. 그래서 난 지금도 그 사람을 꼬박꼬박 찾아가. 그 은혜의 고마움을 느끼고. 응. 자기도 학문적 고집이 있는데 제자 때문에 바뀌어 가지고 그래서 이 복지관이 이렇게 클 수 있었던 거야. 이론적 뒷받침도 많이 해 줬고 그래서 그걸 항상 고마워해. 그래 이제 그분도 지금은 좋죠. 사회복지관이 이렇게 확대되고 그랬고, 여기에 이사로도 모셨고. 에.
우리들 : 선생님 감사합니다.
0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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