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영상/사회복지아카이브-역사기록

2006년 1세대탐방 김만두교수님

이감동 2011. 1. 16. 18:25
작성일 : 2006/09/07 21:38 (2006/09/07 21:39)

001- 

집에서 하기는 조금 어렵다고 제가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장소를 좀 구해보세요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마침 차 선생님께서 아마 아주 좋은 모임의 장소를 대여를 해줘서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1954년에 중앙신학교사회사업학과에 입학을 해가지고
1958년에 졸업을 했어요
그 당시는 사회사업학과가 있는 대학이
이화대학하고 중앙신학교 밖에 없었어요
딱 2개 대학밖엔 없었어요
저가 아무리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중앙신학교는 남녀공학이고 이화대학교는 여자대학이었어요
치마입고 이화대학을 갈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동기가 625전쟁때
저는 부산이 고향인데
부산에 많은 피난민들이 내려와가지고
숙소가 없으니까 차 안에 숙소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
그때 저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제가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우리 교회 목사님한테 목사님
이런사람들 도와줄 수 있는 공부하는데가 없냐고 하니까 있다그래요
이게 중앙신학교에요

그떄는 지금은 KTX타면 2시간 반이면 부산까지 가는데
그떄는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 11시간 12시간 걸려요
밤을 꼬빡 새워가지고 해야 도착을 하던 때에요
참고로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이에요

그래가지고 저가 1933년생입니다
여러분들 내가 나이를 묻지 마시고 계산을 해보시라고요
나는 어떻게 보면
그때 우리사회가 뭐냐면 농업 사회에요
제2차대전이 끝나고나서
뭐 이렇게 하는걸 따져보면 농업사회에요

그래 농업사회의 농어촌
어촌도 되고 농촌도 되는 그런 소위 마을에서 태어나가지고 살다가
그렇하고 이제 625전쟁나서 피난민보고
그리고 저사람들 돕는거를 일해보고싶다
그런공부를 좀 하는데를 어디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가지고 소개받은데가 중앙신학교에요

그리고 돕는데 무슨 공부를 그래 많이해야되는지도 몰랐고
그리고 돕는방법이 그렇게 복잡한지
그리고 그때는 책도 없었어요 여러분들은 얼마나 행복한지를 몰라요
더더구나 지금 IT 가진건 말이지
전 세계의 정보를 갖다 다 들여다볼 수 있잖아요
우린 책이 없었어요 그런것도 없었고

그리고 지금 청계천입니다만은
청계천에는 그야말로 피난민들 양옆으로 4-15(?)
밥팔고 국팔고 술팔고 그렇게 하는데에서
그러니까 우리 중앙신학교는 종로 4가에요 종로4가 청계천 바로 옆에
그러니까 뭐 운동장이 있겠어요 도서관이 있겠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가보니까 절간이에요

무슨학교가 이런 학교가 있나 그랬어요
그래도뭐 여기서 공부한다 그러니까 나 어데 갈수도 없고
기숙사에서 거기도 기숙사는 있더라구요
기숙사에서 인제 지나면서 공부를 하고
그리고 인제 58년에 인제 졸업을 4년 졸업을 하고

그렇하고 처음으로 나간곳이
어데 뭐 사회사업기관이라는게 뭐 있어야죠
졸업을 하고나면 어데가서 일을 해야 되는지도 몰라요
취직할데가 어디 있어요?
사회사업을 아는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수소문을 해보니까 외원기관이 있는데
마포에 서울 마포에 가보면 한노병원이라는데가 그때 있었어요

그래 거기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우리 참전했던 사람들이
노르웨이에 돌아가서 그렇하고 다시 한국을 위해서 봉사할 것이없냐
그래서 찾아 다시 대표를 보내가지고 서울특별시장한테 물으니까
우리가 도와줄게 뭐있냐 물으니까
아 서울시내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에 있는 아동들 결핵에 대한것을 갖다가
컨트롤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가지고
그래가지고서는 그 건물을 받아 시립병원이죠
그 시립병원을 수리를 해가지고
옛날 그 일정시대때는 인보관이에요
사회복지관입니다 그게 인제 인보관이라는건데
그거를 수리를 해가지고 아동 결핵벙원을 만든거에요
거기서 사회사업학과를 모집한다 그런것도 있고

그다음에 을지로 6가에 지금 국립중앙의료원이 있잖아요
저게 다 그 전쟁때문에 파괴되가지고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삼개국이 역시 625전쟁때
야전병원으로 참전했었는데 그사람들이 다시 본국에 돌아가서
우리가 한국을 위해 뭘 도와줄 수가 있겠느냐 그래가지고
한국정부한테 그걸 이렇게 했더니 인제 병원, 병원을 만들어달라 그렇하고
뭐 병원도 시원찮고 치료하는것이 없으니까 병원을 만들어달라
그래가지고 스칸드리아비안(?) 이 와가지고 그 병원을
새로 다듬고 수선해가지고 있는 거기 social worker가 필요하다는겁니다
그게 우리나라에서 의료사회사업의 출발이에요 그런거 있더라구요
그래가지고 제가 마포에 가서 면접을 봤어요

면접을 보고 그렇하고 기다리라 그래요
그래서 서울에 없으니까 제가 형님집에 대구로 내려가서 있었더니
연락이 왔어요 합격이 됏다고
그것이 제가 학교를 졸업을 하고 첫 social woke field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625전쟁으로 해가지고서 나온 피난민들을 돕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공부를 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

그러니까 돕는다고하는 헬핑한다고 하는것이 뭐냐
한것에 대한것이 개념이 굉장히 복잡해요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이제 공부하는 학생들한테 늘 이야기 한답니다만은
돕는다는게 뭐냐 하는 거에요
근데 우리 여기 한국의 고셜워커들이 돕는것에 대한 연구를 안해요
돕는행위에는 무지무지한 장점과 무지무지한 함정이 있어요
두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것이 이 돕는행위입니다
잘못도와주면요 사람망칩니다

저가 우리집사람이 요즘 좀 몸이 안좋아가지고
좀 제가 케어를 많이 해줘야되잖아요
그런데 그 와이프를 도와주잖아요 설겆이도 해줘야되고 밥도 해야하고
이러니까 안되겠어 자립심을 잊어버린다구
자기가 능히 할 수 있는일도 안할라그래요 게을러가지고

아침에 안일어나요 그래가지고 내가 이야 이거 캐어한다고하는거
헬핑한다는거 이거 보통 함정이 있는거 아니로구나
그래서 나는 어떨적에는 막 싸워요 나 인제 안한다고
일부러 내가 일부러그냥 내가 이거 왜해야되냐구
당신이 이거 할 수 있지 않냐구 막 화를 내고 싸움을 일부러 붙여요
그럭하면 자기도 화가나니까 그다음엔 일어나가지고 해요
할 수 있는데도 안해요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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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돕는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어린이를 키울떄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들 애들을 키울때도 돕는다고 하는거 언제까지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