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영상/사회복지아카이브-역사기록

성우보육원 김익자원장님 인터뷰내용 원고

이감동 2011. 1. 3. 22:54


작성자 : 김희진 (error33@hanmail.net)  
작성일 : 2004/02/05 23:53 (2004/03/2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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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숨어서 활동하다가 전해져서 강의하기 시작, 그 시대에 한 사람 없으니깐
60학번 원숭이 보듯이, 40년 차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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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동기분들 - 장안복지관 김인숙 관장님, 나는 선친이 하시든 일을 받아서 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서 사회복지 전공하는 사람, 지금 나이 되면 주부인 사람 많다. 은퇴할 때인데 나는 너무 오래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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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복지 연쇄가 많은 분하고 있다. 제가 맡았을 때  중간이었다. 노인하고 2세 올라올 때 나는 2세대 중 나이 많은 축이었다. 법이 바뀔 때였다. 사회복지전공하면서 자격증 있는 사람으로, 어린이 재단 김석산씨와 CCF에서 같이 근무, 근무확인받고  사회생활하기 전 7년 주부생활하고 미국 같다와서 3년 있다가 결혼해서 가정주부로 있다가 아버님 서천하는 바람이 남편 서울에 두고 여기와서 일을 하게됨. 막내아들 초등 3학년 때였다. 아들, 남편의 이해로 친정 일을 하고있는데 같이 도와 주고 있다. 남편은 직접 참견은 안하시지만 후원관리, 자기주변사람부터 도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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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근무하시면 여기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고향 할머니 같은 존재시죠?
세배하러오고 명절 때 고향이라고 찾아온다. 양력설 세고 음력설에는 그들을 기다려 줘야한다.
아버님 할 때의 원생 잘된 분도 많다.  대전에 주로 그 모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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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시작은 어떻게?
이화대학 사회복지학과 그때는 사회사업과, 서울대 이화여대보다 늦게 생겼다. 두 학교 밖에없었다 졸업할 때 중앙대 생김,
아버님 권유로 뭔지도 모르고 고아원이 사회사업하는 곳인 갑다라고 생각
분야 많지 않았다. 과목이 그룹웍 소셜웤 CO, 비행소년(-검사출신이 가르쳐줌) 정도였다.
외국에서 학문이 많이 들어온 시기고 유명한 교수님 없었던 시절, 이화여대 외국분들이 많았다. 이명은, 김선경, 박보희 선생님께 배웠다. 참 열심히 가르쳐주셨고 열심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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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고 취업한 곳이 어린이 재단 CCF였다. 취업해 있다가 은사이신 이메리 교수님 국회의원되면서 비서관으로 3년 활동하다. 72년에 외국갔다가 돌아옴 결혼, 결혼하고 87년 시설 맡아서 하게됨.
상상도 안했는데 오라버니 3분 전공 틀려서, 보건복지부 법이 바뀌어서 자격증 있는 사람에 한해서 후계자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하게 되었다. 처음에 아버님 일 정리한다고 와서 벌써 15년이 지났다. 너무 오래했다는 생각 든다
사회복지학과 뭔지도 모르고 갔는데 참 좋은 학과였고 열심히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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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하셨나요?
실습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케이스 웤 때 한 사례 맡으면 한 학기가 끝났다. 그 아이의 문제 풀기위해서
그룸웤하는 사람들은 사회관에서 한 학기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실습
지금은 실습 나오는 학생 보면 속상하다.
교수님들께 당부하고 싶다. 실습시간 늘려서 일을 하는 방법 배웠으면
실습이 소흘 한 것 같다.
그때 당시 1, 2학년 때 교양, 3,4학년 때는 실습지에서 살았다.
현재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다고 믿지만 실습 많이해서 사회복지가 뭔지 확실히 알았으면 생활시설에는 가지만 수용시설 안가는 현재의 학생들 사회복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세대가 그렇다고 하지만 자기의 마음부터 다스리고 소외된 사람위해서 사명감 가지고 전공을 했으면
학점 따러 오니깐 자기가 하고싶은 일 아닌데 하는 사람은 취업해서도 수용시설에서는 어렵다. 일반사람이면 이해하지만...
지금 여기 선생님들은 다 사회복지사이고 참 잘한다.
정말 사랑으로 너무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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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기억나는 학생은?
열심히 하는 학생은 험한 일 시켜달라고 한다. 공부방 아니고, 수용시설에서는 몸으로 할 일 많은데 찾아서 하는 학생은 어디를 가도 이겨낼 수 있겠다고 생각든다.
사례하나라도 그 아이 죽 지켜보면서 하는 학생있다. 이렇게 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회복지전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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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뵌 모든 선생님께서 이런 말 해주신다. 주제가 통일된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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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외에 다른 교육?
정신과에서 하는 학문, 사회사업이 의료사회사업 분리되어있지 않았다. 
그때 성모병원에서 실습하게 되었다. 유명한 박사선생님이 주관하는, 일주일에 한번 의사들하고 케이스 컴퍼런스하면서 가르쳐 주신다. 전기충격요법으로 환자다루기도 한 시절, 반응을 가르쳐주셨다. 그 박사소개로 미국 자살방지센터 시찰, 원 웨이 미러, 70년대, 자살하려는 사람들 캘리포니아에서 상담하는 동안에, 인터뷰 할 때 참관, 미국 70년대 사회에 공헌한 학문이 사회복지
그때 배운 것을 현재에 아이들 심리에 적용하고 있다.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묻는다.
케이스바이케이스 위주로 공부, 그룹웤은 많이 공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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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경험이었네요?
사람들이 거짓, 진실을 말하는지 구별이 되더라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은 몸을 많이 움직인다.
먼저 말을 걸고 눈마추기를 내가 먼저 한다.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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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전공한 사람들 중 지금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은?
현재로는 사회복지학 전공한 사람보다 현재는 시설장님들과 많이 접촉, 현재 시설장들 전공자 많은 편 아니다. 대부분 선친, 원로는 전공자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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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한사람,  비전공한 사람들 사이에서 중간역할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도 따르고 믿고, 원장님들에게는 전공 안했지만 노하우있다고 중간에서 잘 믹서해서 좋은 방향으로 하자고 한다. 젊은 사람 선동성, 노인들 노하우 접목시키면 참 좋은 학문이 될 것 같다. 
젊은이들 요새 노인들 (시설장) 못 마땅해 한다. 어른들의 노하우는 굉장히 배울 것이 그것으로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 많고 배울 점이 많다.
어른들 경청하면 좋은 젊은 사회복지사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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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른들을 대해야 할까? 늘 생각했었는데 도움되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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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강의자료 수업방식은?
원서 2권 봤다. 필기로 살았다. 책도 없고
60년대는 전쟁 나고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 교수님의 학문이 다 인줄 알았다. 달달달 외었었다.
수업에 듣지 안으면 다른 방법 없었다.
그렇게 공부를 했다. 등사해서 나눠주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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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교수님께 부탁해서 2권 샀다. 빠졌을 때는 남의 노트 빌려서 했다.
요새 젊은이들 책 너무 많고 인터넷 이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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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한 젊은이들이,  학문의 일괄적인 맥은 같다. 그러나 너무쉽게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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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아져서, 좋은 책 발간해주신 교수님 감사
공부하는 학생들은 책 내용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해주셨으며
나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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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많이 없는 여자로서 어떤 마음가짐, 신념으로 공부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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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기 위해서 공부한다고 생각했지 어디 취업해야겠다 부모님 사업 물려받아야겠다고 생각 안했다. 치열하게 더 노력하겠다고 생각 안했다. 취업처 많았다. 학문으로 공부했지 취업위해서 한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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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시절 수학여행으로 아버님 시설할 때 들르곤 했다. 그때 교수님들 아버님과 같이 외국 나가서 연구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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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에는 특별히 무슨 생각으로 학문을 전공한 것 아니고 다른 그랬을 것이다.  
남을 돕는 것 정도의 학문으로 생각하고 순수하게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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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유명하신 분이었는데 보고 느낀 점은 ?
제가 원장 첨 취임할 때 아버님은 황토를 개간하신 분이다고 생각, 정부의 보조 관심없을 때 아버님이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생각이 바뀌어 전쟁 때 가난한 아이들 생각함, 아이들 모아서 시설시작, 친자녀를 돌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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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옥토에서 거둬들이는 것 같다.  보조금 등으로, 아버님 이름으로 쉽게 할 수 있었다.
이메리 교수님과 아버님이 친분관계 있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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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반도 못 따라 가고 있다.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러워서 시작하셨고 나는 사업 잊기 위해서, 그러나 현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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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취학 아동들 내가(원장님) 안보이면 찾는다. 필요한 사람이 되었구나하고 느낀다.  하느님의 뜻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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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과 안나왔으면 이렇게 좋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자기의 희생 없이는 못하는 사업 같다. 영리 목적이라면 시간, 돈. 정열을 들일 수 없을 것 같다. 희생의 보람은 아이들이 잘 자라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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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도 대선배님이신데 기억나는 말씀 행동?
아버님은 강남대 2회 출생, 살면서 내가 좀 밎져라 내가 좀 손해를 보고 도움을 줘라 지금은 손해보는 것 같아도 덕으로 돌아온다.
항시 손해보는 생활을 해라 섬짓하기도 하지만 겸손, 남한테 잘하라는 말씀
절대 내가 덕을 보는 생활을 하지 마라 손해를 꼭 너희가 봐라
당신이(아버님) 그렇게 사셨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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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운영하셨는데 철학적인 어려움, 갈등?
극복방법?

4020
저희들이 하는 일 알아달라는 것 아니지만 사회복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 제일 못 참겠더라 굉장히 싫더라
왜냐면 나는 사회복지 이미 제궤도에 오른 시기에 사회복지에 입문하였지만 첨 시작하는 그분들은 어려운 시설이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옛날 일을 들추면서 무조건 시설장 나쁘다고 할 때 분개했다.

4140 우리아이들 키우면서는 아이들은 어른 맘 잘 모른다. 상처받은 아이들이므로 아이들은 잘 해줘도 의심하더라, 그때 속상할 때 대화로 풀어지는 아이가 있고 가출하는 아이 있다. 다시 다 돌아오더라 가진 것,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는데 꼭 고등학교라도 졸업하라고 하는 데 가능하면 대학보네는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면 마음 아프다. 그것을 못했을 때 가슴가장 아프다. 그러나 검정고시 한다는 얘기 꼭 들린다. 사고치는 것이 속상한 것이 아니라 가정집 아이들도 그러는데 뭐,,,

4320 또 첨에 동네사람들 좋은 시선 아니었다. 짓밟더라, 그러나 현재는 주민들이 서로 자기들이 후원자가 되어 도와 주고 있다. 시설하면 변두리로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사회로 파고들어 주변사람들에게 인식을 다시 심어주는 것이 역할이고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 나쁘게 취급하는 주민들이 참 불편했다. 그래서 나가서 싸울 때 절대로 지지말라고 했다. 지고오는 것이 젤 싫더라, 자신감 심어줬다. 

4450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은 시설에서 얼마나 해주는 가이다.
그래서 나가서 싸우거든 지지마라고 했다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우리시설 아이들은 참 당당하다.

4533 그대들이여 이런 철학을 가지고 일을 해라!!
자신감을 가지고 해라
왜냐면 남의 눈치보지 말고 아이들에게 얼마나 해 줄 수 있는가가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이다. 최선을 다해줘라, 이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라 그러다 실수하면 고쳐가면서 하면 된다.
그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을 다해줘라 자신들도 즐겁고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팔자,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그 운명을 좋게 훌륭하게 하심으로 그분(학생)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4722 운명이다. 다른 사람은 이 학문 자체를 모르는데, 알았다는 것도 그 사람 팔자다
내가 잘되길 바라듯이 아이들도 잘되길 바라고 일하면 다 좋을 것 같다. 단순한 생각인지 모르겠는데요..

4800 기관의 미션과 나의 미션을 어떻게 잘 접목시킬 것인가?
지금 젊은이들 생각 모르겠다.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전진햇다.
아이들이 어떻게든 잘되게 잘 살게, 훌륭하게 키워보자, 즐겁게 상처를 덜 주게 키워보자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시설생활 안해봤으니깐 잘 모른다. 그 속에 들어와서 발견해서 같이 접목하면 안될까? 들어와서,,,
클라이언트의 삶에 동참해서,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는 안 당해보니깐 모른다.

4900 너도 내 입장 되어봐라 듯이

5020 아이들, 선생님, 클라이언트의 입장 다르다. 오너의 입장에서는 더 넓은 것이 보인다. 학생들도 오너의 되었다는 입장으로 본다면 넓게 보고 더 애착을 가지고 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 되면 나도 풀 뽑는다. 같은 풀을 뽑는 일이라도 근데 선생님도 노력하지만 오너의 입장, 선생님의 입장, 아이들의 입장에서  다르다. 오너는 더 넓은 시야로 보게 된다. 학생들도 오너의 입장이 되도록 할 것.

5044(여담)힘든 일 많다. 선생님들도 어렵다. 시설생활은 천사 아니고는 감당 못한다. 시설 선생님들 대단하다 (시설연합회장에서 말할 때 )

5208 하기 싫으면 도장만 찍어준다고 한다. 아주 열심히 할 수 있게, 우리 원에서 있다가 간 선생님은 더 이상 볼 것도 없을 정도라고 할 정도로 가르친다.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워가고 그렇게 배우고 나면 쉬워진다.

5303 굉장히 힘들게 하고 예리하게 해야한다. 그래서 여성들이 생활 시설일에 더 잘 맞는 것 같다. 세심하게 할 일이 많다. 아이들 말썽부릴 때 설명, 납득하게 끔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반드시 설명을 해줘라 그 아이도 혼나는 이유를 알고 벌 슨다. 절대 손을 대지 말라
전공한 사람과 안한 사람의 차이 일 것이다.

5440 전공한 사람 안한 사람보다 낮다. 뭐가 나아도 낮다. 제가 보기에는,,,
함부로 못하는 이야기다. 다른 원장님들 똑 같다고 말하지만
시설장을 하면서 30~40년 된 원로 원장님 앞에서 함부로 말 못했다. 말하기 시작한지 5년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50년 역사이후 여성 회장 첨이다. 남자 원장님 말 많으시지만 재선되었는데
개인 시간 가지고 싶어 2년하고 그만 하고 싶다.

5600 관공서에서 시설원장님들께 못된 소리 못하게 한다. 관공서에 자문, 전공한 사람이니깐 사회복지계에서 여자로서 협의회 회장으로 이런 역할하고 있다.

5830 김만두 교수님 뵌 적 있다.